오피니언 사설

공무원조차 기피하는 신행정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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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 과천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 가운데 81.5%가 자신이 속한 부처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하더라도 수도권에 있는 집을 팔지 않을 생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가운데 60%는 가족이 모두 행정도시로 옮기지 않고 혼자 또는 가족의 일부만 이사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교통부가 지난해 4월 과천청사 공무원 3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결국 정부 부처가 행정도시로 이전하더라도 공무원의 대부분은 집도 팔지 않을 것이며, 생활의 근거지를 옮길 생각도 없다는 얘기다. 조사 결과는 공무원들이 정부의 부처 이전계획에 따라 마지못해 행정도시로 근무지를 옮기기는 하겠지만 심정적으로는 행정도시를 기피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공무원들의 이런 반응은 5일 행정도시건설청이 내놓은 '행정도시 건설에 따른 공무원 종합복지 대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2012년 신행정도시가 완공된 뒤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을 위해 무료 통근버스와 전용열차를 운행하고, '가족 간 격리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아예 공무원들이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행정도시로 출퇴근하거나, 가족은 수도권에 그대로 둔 채 단신 부임하는 것을 전제로 만든 계획이다.

이런 식이라면 새로 건설되는 행정도시는 공무원들이 낮에만 북적거리다가 저녁만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유령의 도시가 될 공산이 크다. 이래서는 행정도시 주변 지역이 발전할 유인도 없고, 청사 이전에 따른 경제적 유발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지방의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행정도시 건설의 명분은 온데간데없고, 세금으로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의 교통비를 대고, 격리수당까지 줘야 할 판이다. 수도권 인구 분산은커녕 공무원들이 수도권과 행정도시를 오가는 데 따른 시간 낭비에다 그로 인한 교통혼잡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 정부는 공무원들조차 가지 않겠다는 행정도시 건설에 수십조원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