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5곳서 불피우면 "초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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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년부터 복원되는 봉수대등 남산의 5개 유적지는 대부분 일제의 문화말살정책, 외세침략등에의해 파괴된 역사의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수난사를 말해주는 것들이다.
94년까지 옛모습을 되찾게될 이들 유적의 유래와 복원계획을 살펴본다.
◇봉수대=변방의 긴급상황을 알리는 전국봉화방의 중앙터미널 역할을 한 5개의 봉수대가 봉우리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위치가 고증된 팔각정부근 봉수대 1개만 복원할 계획.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로 신호를 보냈으며 5개가 각각▲함경·강원▲경상▲평안▲황해·평안▲충청·전라등 5개방면의 신호를 받거나 보내는 중요한 국가적 통신시설이었다.
불·연기를 피워올리는 개수가 위급정도를 나타내▲1개는 정상▲2개 적출현▲3개 경계접근▲4개 경계침범▲5개 접전개시등을 뜻했다.
따라서 연대(연대)도 5개씩이었다.
◇성곽=수도방위를 위해 태조때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일곱차례에 걸친 축조와 대규모 보수가 있었으며 총연장은 18㎞.
지난 77∼79년 일부 복원공사가 이루어졌으며 현재 서울타워주변등 4곳(1·6㎞)이 미복원상태로 남아있다.
94년 1차로 복원되는 구간은 남대문∼남산식물원간 (1백m으로 이구간에는 성곽을 끼고 애국가마당이 들어선다.
◇국사당=태조때 남산의 산신을 목멱(목멱)대왕으로 봉작, 매년 봄·가을 두차례 제사를 지내기위해 지은 신사로 원이름은 목멱신사.
1925년 일제는 민족정신말살을 목적으로 신사를 강제로 철거했다. 그러나 사당의 일부가 무악동산2 인왕산기슭으로 옮겨져 보존돼 왔으며 지난70년 중요민속자료 17호로 지정된 무녀도 18점이 남아있다. 사당건물도 73년 중요민속자료 18호로 지정됐다.
현재는 무당들의 당굿장소로 사용되는등 처음건립목적과는 달리 사용되고있어 굳이 남산정상으로 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복원대신 표석을 설치키로 했다.
◇노인정=조선조말 헌종때 풍은부원군 조만영이 지은 정자로 노인들이 모여 음풍영월했던 정자.
1894년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위해 한반도에 병력을 출동시킨 일본이 조선과 청나라로의 진출을 위해 우리측에 내정개혁회의를 체의, 이곳에서 양측 대표들이 세차례 회담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세차례의 노인정회담이 결렬된뒤 일본측은 그해7월 경복궁을 무력점령, 친일정권을 수립하고 청일전쟁까지 일으켰다.
현재 국유지이나 개인소유 기와집이 들어서 있어 복원과 함께 개인가옥은 철거할 예정.
◇남산사=정확한 이름이나 관련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노인정자리에서 정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돌계단과 주춧돌·축대 및 건물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조선조에 건립된 70평 크기의 금당(금당)과 30평규모의 법당(법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서울시내에 현존하는 극소수의 사찰터란 점에서 귀중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석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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