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타주 명화(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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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련 사람들은 누굴 붙잡고 얘기를 걸어도 예술에 관한 화제라면 빠지지 않는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한가락쯤은 흥얼거릴줄 알고,푸슈킨의 시 몇행쯤은 보통 줄줄 외며,미술관의 명품에 관해서도 일가견을 갖고 있다.
그점에서 특히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자존심과 긍지는 대단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1941년 6월22일 일요일 독일의 나치군 52개 사단이 레닌그라드를 향해 진군을 개시했다. 그때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작품들을 숨기고 보존하기 위해 자진해서 목숨을 내걸고 나선 일은 가위 영웅적인 것이었다.
시민들은 미술관의 소장품들을 수십개의 화물열차에 옮겨 싣고,열차의 지붕위엔 기관총을 장치하고 우랄지방의 미술관으로 피신시켰다. 또다른 시민들은 가두의 조각품들을 끌어내려 땅에 묻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소품들도 상당수 시민들의 집으로 옮겨졌다.
다른 한편에선 시민들이 페인트통과 붓을 들고 나섰다.
이들은 저마다 러시아 정교회의 지붕으로 올라갔다.
금빛으로 칠해진 교회의 돔은 공습받기 좋은 표적이었다. 그 돔의 금빛을 지우는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닌그라드시의 최고 명소인 성이삭교회의 황금 돔은 그 덕에 폭격을 면했다.
시민들의 페인트 칠하기 작전으로 폭격을 피할 수 있었던 곳은 네바강을 가로지른 수많은 교량들과 곳곳의 궁정들,명건물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더 큰 감동은 전쟁이 끝난뒤의 일이다. 숨겨진 미술품들이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민들이 집으로 옮겨 놓았던 미술품도,땅에 묻어 두었던 조각들도 온전한채 본래의 자리로 반환 되었다.
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런던의 대영박물관,뉴욕의 메트러폴리턴 미술관과 함께 세계 최고,최대의 미술관으로 꼽힌다.
러시아의 표트르대제(1682∼1725)는 남달리 미술에 관한 애착이 많았다. 그는 유럽을 여행할때면 미술품 경매장에서 명품들을 사모았다. 대제사후 얼마뒤인 18세기 후반 에카테리나 2세의 통치가 시작되면서 미술품 수집은 국가정책의 하나가 되었다.
그때 에카테리나여제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창설했다. 1765년 의 일이다.
바로 이 미술관의 명품들이 레닌그라드 아닌 서울에서 선보이고 있다. 새삼 세상이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지만 때마침 소련의 정변마저 가라앉아 우리는 한결 밝은 마음으로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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