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그대 아직도 유토피아를 꿈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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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기억 유토피아 욜렌 딜라스-로세리외 지음, 김휘석 옮김, 서해문집, 488쪽, 1만9500원

현실과는 달리 행복한 세상, 그야말로 꿈같은 사회를 우리는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16세기 악덕 귀족의 횡포에 분노한 영국의 '모범 귀족' 토마스 모어가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간 이상적인 사회를 그린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파리10대학(낭테르)의 사회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유토피아라는 매혹적인 개념의 역사와 본질을 깊이 있게 파헤친다. 그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풍요'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서로 상충하는 두 열매를 동시에 따먹으려는 인간의 모순된 욕망을 반영한다. 공산주의 유토피아인 '인민의 낙원'은 그런 모순 때문에 현실에서 사라졌다.

꿈꾸는 것은 공산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20세기 초 논객인 앙드레 고다르는 '형제애로 단결된 유럽이 십자군의 기치 아래 문명과 기독교를 전파하는 과업을 수행하는' 꿈을 꾸었다. 조국.노동.가족.종교라는 예언자적 구호로 가득 찬 그의 사상은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즘의 바탕이 됐다.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구현해 보려는 사람도 많았다.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조반니 로시는 '사회적 화학실험실'이라는 공동체를 세우고 농민들에게 사회주의를 주입,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무정부주의자 세바스티앙 포르는 어린이에게 희망이 있다고 보고 1904년 시골에 교육공동체를 세워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1854년 빅토르 콩시데랑은 미국 텍사스에 땅을 사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계획을 추진했다.

결과는 모두 실패다.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몽상가들은 실현 가능성은 따지지 않으며, 현실과 상상을 교묘하게 섞어 사람들의 혼동을 유발한다는 지은이의 지적이 새겨들을 만하다. 그에 따르면 유토피아의 태반은 새로운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 정치시스템의 위험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야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뜻으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영미권이 아닌 프랑스의 학자가 지은 책답게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과 사상들이 상당히 낯설다. 그런 만큼 자극도 신선하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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