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욕치른 「소신발언」/조광희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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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본인의 뜻과는 달리 잘못 전달된 지상보도로 당과 의장단·동료의원들에게 누를 끼친데 대해 백배사죄합니다….』『이번 일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면서 맡은 임무를 수행하겠으며 다시 한번 고개숙여 사과합니다.』
10일 오전 부산시 의회가 시교육위원 선출을 위한 제3차 임시회에서 교육위원 후보들의 소견발표를 듣기직전 최고령으로 당선돼 시의회 개원당시 임시의장으로 사회봉을 힘차게 두르렸던 김허남 의원(71·서구·민자)이 곧 울음이 터질듯한 침통한 표정으로 준비된 원고를 힘없이 읽어내려가 의원석과 방청석의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김의원이 사과발표믈 하고 하단하자 우병택 의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김의원은 경솔했던 행동을 이번 기회에 깊이 반성하고 주어진 임무만을 성실하게 수행해주길 바란다』면서 마치 스승이 제자를 꾸짖듯 질책했다.
김위원의 이날 사죄는 시교육위원 선출을 앞두고 각종 추문이 한창 나돌고 있던 지난 6일 『국가 백년대계의 기틀을 다질 교육위원이 당의 압력이나 금품공세에 의해 선출된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고 선출과정에서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교육위원 후보 24명이 51명의 시의원들을 상대로 금품공세를 펴고 있고 당에서도 지난번 시의회 의장선출때와 같이 특정후보를 선출토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성명을 내 파문을 빚은데 따른 것이다.
민자당 부산시지부(지부장 문정수 의원)는 그후 8일 대책회의를 열어 김의원을 해당행위자로 제명조치키로 했고 시의회 의장단도 의원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당의 제명조치에 동조하는등 당과 시의원들이 합세해 김의원에게 압력을 넣은 끝에 김의원을 굴복(?)시켜 교육위원 선출직전 사죄발언을 하도록 함으로써 이번 교육위원 선출과정에 당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시의원이 당의 막강한 영향력앞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입증시켜주었고 또 소신발언을 한 동료의원을 이해하기는 커녕 당의 눈치를 보면서 무조건 당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현행 지방의회 의원 정당공천제가 지역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게 될지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신있는 발언을 했다가 4일만에 교육위원 후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굴욕적인 사과를 한 김의원의 입장은 그 혼자만이 짊어지고 있는 멍에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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