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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특허 소급보호/일등 세계각국 요청 봇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87년 관례없는 미 “특대”가 화근/EC와 협상중… 국내업계 비상
지적재산권중 물질특허 부분에 대한 소급보호를 둘러싼 EC(유럽공동체)와의 최종협상을 앞두고 국내 의약·정밀화학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에 이어 EC에까지 물질특허를 소급적용해줄 경우 국내업계에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특허강국인 일본과 스위스까지 「미국·EC와의 동등대우」를 요구해와 EC와의 협상타결후 이들 국가와 또다시 지리한 말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다.
특히 일본은 지난 6월 동경에서 열린 제1차 한일 무역산업기술협력위원회에서 우리측에 일본 종합상사에 대한 무역업 개방,수입선다변화제도의 철폐와 함께 지적재산권 소급보호를 요청한데 이어 지난달 상공부와 통산성의 정례모임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산넘어 산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동등대우를 요구하는 EC에 대해 법이 아닌 행정지도를 통해 물질특허를 소급보호해줄 방침이나 보호기간·방법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려 있으며 다음달말 브뤼셀회의에서 최종담판을 지을 계획이다.
그러나 국내업계는 『소급적용규정은 전세계에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진통을 겪고 있다.
지적재산권 소급보호를 둘러싸고 88년 이후 EC와 일곱차례나 머리를 맞대고 앉았었는데도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방에 따른 국내업계의 피해도 크지만 지난 87년 7월 미국에 대한 지적재산권 소급보호조치가 근본적으로 국제관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정부는 당시 특허법을 개정,물질특허제도를 도입하면서 이 제도의 도입이전에 제법특허로 출원중인 것을 물질특허로 인정해주는 한편 미국에서 이미 특허가 났더라도 국내에 판매되고 있지 않은 물질특허까지 보호해주도록 했었다.
정부는 그러나 소급적용 부분에 대해서는 법에 명시하지 않고 미국과 문서로 협약을 맺고 이를 국회에서 통과시켜 조약의 효력을 갖도록 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당시 국회에서는 이에 대해 위헌론이 제기됐었다.
법에 명시할 경우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소급적용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해서만 특별대우를 해준 것이다.
EC는 이같은 특별대우가 동등대우를 규정하고 있는 GATT(관세 무역일반협정)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미국과 같은 소급보호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정부는 이에 대해 안보등 한미관계의 특수성을 들어 EC의 이해를 구했으나 명분에서 밀리고 있다.
결국 정부의 대미협상력 부족에다 국제관례를 무시한 미국의 압력이 최근 우리나라가 곤경에 처하게 된 근본원인이다.
EC와의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정부관계자는 『5공시절 대외적으로 무력했던 정부에 책임이 없지 않다』고 지적하고 『미국에 대한 소급보호 때문에 수년간 국제사회에서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EC측에 「미국에 산업강간을 당했다」는 말까지 해가며 우리입장을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EC 및 일본에 대해 물질특허를 소급보호해줄 경우 국내업계가 입게될 타격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87년 7월 이후 지난 3월말 현재 물질특허 출원건수는 모두 6천5백58건. 이중 국내출원은 전체의 5.7%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스위스 포함)이 전체의 41.3%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26.1%,일본이 24.5%에 이르고 있다.
▷물질특허◁
의학·농약·섬유 등 각 분야에서 개발된 물질자체에 대해 특허를 인정하는 제도.
제조방법만을 달리하면 특허권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법특허와는 달리 물질자체에 대한 특허권이 인정되면 관련업체의 기술개발을 위축시키게 된다. 우리나라는 87년 7월 이전에는 국내 산업보호를 위해 제법특허만을 인정해왔다.<길진현·오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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