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논술] '독서와 토론' 훈련 이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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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논술 교육을 위한 중등교사 연수회'에 참석한 교사들이 지도 교수의 지시에 따라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

서울대가 전국의 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논술 교육을 위한 중등교사 연수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서울대가 연수회를 통해 2008학년도부터 본격 도입하는 통합 논술의 출제 방식과 채점 과정, 좋은 답안 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한 주에 100명씩 3주 동안 모두 300명의 교사가 참가할 연수는 분반 강의, 소규모 워크숍, 토론 강의로 진행된다. 교수와 교사가 함께 문제를 내고 답안을 작성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대 교수들이 교사들에게 제시한 통합교과 논술 대비법을 소개한다.

◆논술 준비 이를수록 좋아

2008학년도 서울대 통합교과 논술은 겉으로 보면 쉬울 것이라는 게 교수들의 말이다. 그러나 제시문과 논제는 평이할지 모르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기 때문에 답안 작성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조건을 충족시키며 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고도의 사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건이 많을 경우 답안이 천편일률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창의력을 강조하는 논술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일반론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게 서울대 교수들의 지적이다.

지리교육학과 유재명 교수는 "독창적인 견해를 전개하려면 독서와 사색으로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논술 준비는 빨리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관심 분야가 다르더라도 학생들이 같은 책을 읽고 대화와 토론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교사들에게 주문했다. 읽고 토론하며 생각을 넓혀 나가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교과서는 통합 논술의 기본이자 완성

경북대사대부고 정지홍 교사(국어)는 "2008학년도 서울대 통합교과 논술은 모든 제시문을 교과서에서 발췌한다고 들었다"며 "교과서 내용을 좀 더 확장해 가르치되 학생들이 그 내용을 사회 현상과 접목해 보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호남원예고 김찬중 교사(농업)는 "연수에 참여하면서 논술은 특정 교과, 특정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며 "여러 교과서 속에 들어 있는 주제를 두루 통달해야 하므로 교사들이 공동 연구를 해야 효과적으로 논술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연수의 총괄책임자인 조영달 사범대학장은 "논술은 인류 보편의 문제,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특수한 문제 등을 다양한 지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이라며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영역의 지식을 통합하고 아우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채점자를 감동시키는 글 써야

철학과 박효종 교수는 "논술문의 첫 독자인 채점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며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 글에 흥미와 긴장감을 불어넣되 혼을 실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학생들의 글이 그만큼 무미건조하고 딱딱하다는 지적이다.따라서 객관적인 논거를 사용해 자기 주장을 펴는 것은 좋지만 글에는 글쓴이의 세계관과 인격이 담겨야 한다는 말이다. 박 교수는 "논술을 지도하려면 학생들의 바른 인격 향상에 기여할 만한 주제와 제시문을 고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며 "인성 교육이야말로 논술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채점자들에게'이렇게까지 고민했구나' 하는 느낌을 줘야 한다"며 "그러려면 깊이 있는 논증을 해야 하는데 여러 방면의 책을 충분히 읽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연계 학생을 위한 글쓰기 따로 있어

이번 연수에서는 2008학년도부터 자연계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수리과학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 자연계 교사들을 위한 연수가 따로 진행됐다.

창원남고 하광아 교사(화학)는 "연수를 통해 수리과학 모든 과목에 나오는 기본 개념을 철저히 이해하는 게 핵심이라는 판단이 들었다"며 "학생들에게 신문과 잡지를 꾸준히 읽히면서 자연과 사회 현상을 과학적 원리와 연관시키는 훈련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리과학 논술에서는 논리력과 사고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교수들의 설명이다.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의 원인을 발견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고, 현상의 규칙성을 수리적 모형으로 풀어내는 논리적 과정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또 과학적 원리를 글로 풀어 쓸 때는 이론적이고 전문적인 어휘를 사용하면서 사례를 들어주라고 조언했다.

박형수 기자

◆채점 교수가 원하는 답안

교과서 토대로 주장 펴되 창의적 목소리 담겨야…

서울대 논술 문제는 철저하게 고등학교 교과서를 바탕으로 한다는 게 이번 연수를 통해 확인됐다.

서울대는 모든 제시문을 교과서에서 발췌할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 이상의 것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제는 고전과 시사 이슈 등에서 다양하게 출제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교과서 지식 범위 안에서 답안을 작성하면 되지만 이를 뛰어넘는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채점할 때는 학생 자신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지를 본다는 게 채점 교수들의 말이다. 대가의 이론을 인용하면서 유려한 문장력을 뽐내더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없으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소 거칠더라도 학생다운 참신한 주장을 제시하고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으로 성실하게 주장을 뒷받침한 답안이 좋다는 얘기다.

서울대는 그동안 하나의 논제로 2500자 이상의 글을 쓰게 했으나 2008학년도부터는 3개의 문제를 주고 각각 400, 600, 1500자 분량을 쓰게 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한편의 논술문을 쓰는 능력뿐 아니라 논제가 요구하는 바를 간략하고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훈련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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