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월이 가면(1967)'의 한 장면이다. 주연인 문희씨(左)의 의상을 내가 맡았다.
그는 말없이 내 앞에 흰 봉투를 내밀었다. "뭐죠, 지미씨?" "받으세요. 노 여사님." 봉투 안을 들여다보니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들으셔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양귀비 의상만 담당해주세요. 그리 해주실 거라 믿겠어요."
의상비 명목으로 영화사에서 이미 120만원을 받은 뒤였는데도 김씨는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10만원을 팁으로 들고 온 것이다. 단호한 성격의 그다운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역사상 최초로 한 영화만 작업하기로 하는 '전속 계약'을 맺는 선례도 남겼다.
사극 영화 의상은 만드는데 공이 많이 든다. 클로즈 업 장면에서는 미싱으로 박은 흔적조차 보여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미싱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상의는 거의 손바느질을 해야 했다.
다행히 김지미씨의 '양귀비'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의상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상영 기간 동안 출연자들의 영화 의상을 극장 안에 전시해 놓기도 했다. 그 외에도 문정숙 씨의 '만추', 문희씨의 '사월이 가면'을 비롯해 김민자씨, 김혜정씨, 안은숙씨, 태현실씨 등 당시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영화의상은 거의 나를 거쳐 세상에 나왔다. 영화 자막에는 늘 '의상 노라노'라고 큼지막한 문자가 올라 의외의 홍보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영화의상을 디자인하는 일은 참으로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장면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주연 배우의 움직임을 생각하면서 디자인해야 한다. 의상이란 캐릭터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하니 모든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계산한 뒤 만들어야 했다. 의상이 배우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면 그 영화 의상은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실은 비단 영화 의상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지나치게 옷이 튀면 사람의 인격이 손상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의 패션쇼에서 모델로 나섰던 미녀 중에는 나중에 영화감독에게 픽업되어 영화계로 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빈화씨, 문혜란씨, 남미리씨 등이 그들이다.
노라 ·노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