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말기 정치적 입김 작용설/의문점 많은 87년 경찰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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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발생 하루만에 사체화장·증거인멸/부검 제대로 않고 수사발표도 번복
오대양 집단변사사건은 발생 4년이 지나도록 정확한 변사원인과 동기·과정 등이 밝혀지지 않은채 베일에 가려 있다.
당시 경찰은 현장보존은 커녕 32구의 시체에 대한 철저한 부검도 실시하지 않은채 사건발생 하루만에 시체를 화장하고 증거도 모두 인멸시켜 버렸다.
경찰이 서둘러 사건을 종결한 것은 『87년이 5공말기로 6·10국민대회와 7∼8월 노동자 대투쟁등으로 민심이 흉흉했고 더이상의 민심동요를 막으려는 정치적인 이유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87년 8월29일 경기도 용인의 오대양공장 천장에서 발견된 남자 4구,여자 28구의 변사체는 처음부터 의혹투성이였다.
우선 시체가 발견된 천장이 가로 1m·세로 7m인 합판 4장이 깔린 부분을 제외하고는 밟으면 밑으로 꺼지게 돼있어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성인남녀 32명의 자살 또는 교살이 가능한지가 풀리지 않고 있다.
경찰은 당초 공장장 이경수씨와 박순자씨의 두아들 이영호·재호씨 등 3명의 남자가 나머지 29명을 살해하고 자신들은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박씨의 두 아들은 다른 시체밑에 깔려 있었다는 반박이 제기되자 공장장 이씨는 혼자 나머지 31명을 살해하고 자신은 목매 자살했다고 번복했다.
그러나 이씨의 부검결과는 오히려 이씨는 타살됐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씨는 목의 뒷부분까지 색흔(졸린 흔적)이 나있어 누군가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자살을 가장하기 위해 매달아놓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씨의 등에서 시체가 뉘어져 있을 때 형성되는 사반(얼룩자국)이 발견돼 이같은 의혹을 더하고 있다.
또 이씨의 목앞쪽에는 목이 졸리자 본능적으로 줄을 잡아 당기려다 생긴 것으로 보이는 손톱자국(반사흔)이 나있다.
가장 나중에 죽은 것으로 확인된 이씨가 살해됐다면 나머지 모두도 살해됐거나 적어도 현장에 제3의 인물이 있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숨진 여자 28명중 정액검사를 실시한 12명 전원이 양성반응을 보인 점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오대양은 평소 부부조차도 성관계를 금하는등 금욕적 집단이었고 현장의 남자 4명중에 교주 박씨의 두아들이 있다는 점으로 미뤄 난교의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교주를 먼저 죽이는 종교집단은 사례가 없는데도 교주 박씨가 제일먼저 살해된 것으로 보이고 게다가 몸에 멍자국등 반항한 흔적이 있어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자살이 아니라면 누가 왜 이들을 살해했을까. 민주당 김현 의원은 『송재화씨는 거액사채를 조달하면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신이 교도소에 가는 것으로 끝난 반면 박씨는 증거가 남는 어음을 발행했고 이것이 살해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침례교신학대 정동섭 교수는 『박씨등은 인근 한스농장에서 살해돼 옮겨졌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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