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만 불붙은 역사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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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국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온 대만과 역사 주도권을 놓고 총성 없는 '내전(內戰)'을 벌이고 있다. 이번엔 박물관과 역사교과서가 공방전의 대상이 됐다. 베이징(北京)에서 발간되는 신경보(新京報)는 1일 대만 정책을 전담하는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의 양이(楊毅) 주임이 최근 대만이 '탈(脫)중국화' 움직임을 보인 것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박물관 놓고 자존심 경쟁=중국과의 통합을 거부하고 독립노선을 걸어온 대만은 중국과 문화유산의 보고인 국립박물관을 놓고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측은 경쟁적으로 박물관 재단장에 나섰다.

먼저 타이베이(臺北)의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사진(下))은 미화 2100만 달러를 투자해 4년간의 증축(총면적 1만5000㎡) 공사를 끝내고 지난달 초 다시 문을 열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는 65만4000점이 소장돼 있다. 장제스(蔣介石) 전 대만 총통이 1949년 12월 공산당에 패해 쫓겨 가면서 자금성(紫禁城)과 난징(南京) 등지에 흩어져 있던 역대 황제들의 국보급 소장품들을 가져간 것이다.

고궁박물관의 증축에 자극받은 중국은 베이징 천안문(天安門)광장 옆에 위치한 국가박물관(上)을 최근 대대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박물관 측은 "현재 6만5000㎡인 박물관을 세 배 규모인 19만2000㎡로 확장하기 위해 4월부터 휴관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미화 3억3000만 달러(약 3150억원)를 투입하는 박물관 공사가 개관 100주년을 맞는 2010년에 끝나면 규모 면에서 세계 최대가 된다. 이 박물관은 1910년 중국 역사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했으며, 62만여 점을 보유하고 있어 고궁박물관과 유물 숫자가 비슷하다.

양측은 대만 고궁박물원이 최근 소장품에 대한 조례 수정안을 입법원(의회)에 제출한 것을 놓고도 입씨름을 벌였다. 대만 행정원(총리실에 해당) 산하 연구발전평가위원회가 박물원 조례 중 '중국 고대 문물'이란 표현을 '국내외 문물'로 변경하려 하자 중국 측은 "중국에서 건너간 소장품과 중국의 혈연관계를 끊으려는 탈중국화 책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대만 "역사교과서 독립" 선언=대만은 정치적 독립 선언이 여의치 않자 우선 '역사 독립'을 도모하고 나섰다. 대만의 중국시보(中國時報)는 최근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닌 독립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개정했다"고 보도했다.

봄 학기부터 고교생들이 배울 새 교과서는 명칭부터 크게 바뀐다. 그동안 대만에선 역사 교과서를 국사1.국사2.국사3으로 나눴는데, 대만 역사를 다룬 국사1은 앞으로도 '국사'라는 명칭을 쓰지만 나머지 두 과목은 '중국사'로 바뀐다. 중국사는 대만이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란 의미를 깔고 있다. 교과서 내용에서도 중국을 지칭해온 '우리나라(我國)'와 '본토(大陸)' 등의 표현을 '중국'으로 바꿨다. 대만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만 언론들은 "교과서 개정이 대만 독립을 추구해온 집권 민진당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중국인들의 마음을 결코 얻지 못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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