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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파병 조사단 현지 간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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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라크 추가 파병 국회조사단(단장 강창희 한나라당 의원)이 24일 밤 엿새간의 현지 조사 결과를 마무리하는 간담회를 했다. 간담회는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주집무실로 사용했던 바그다드의 공화국궁에서 열렸다. 강창희(한나라당).송영길(열린우리당).정진석(자민련).한충수(민주당)의원과 유정렬 중동.아프리카 연구원 이사장, 전경만(한국국방연구원)박사 등이 참석했다.


바그다드 공화국궁에서의 국회 조사단. 왼쪽부터 유정렬 이사장, 송영길.한충수.강창희.정진석 의원, 전경만 박사. [바그다드=서정민 특파원]

◇이라크의 인상

▶강창희 의원=이라크는 석유자원.농지 등 모든 것이 풍부하다. 잘만 관리하면 부국이 될 수 있는 나라다.

▶정진석 의원=이라크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의 나라다. 많은 사람이 후세인 정권에서의 해방을 기뻐하고 있지만 피부에 와닿는 상황 개선이 없어 불안해 하고 있다. 후세인 정권이 국민 복지를 등한시했지만 새로운 민주정부가 새로운 비전으로 국가를 이끈다면 높은 삶의 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다.

▶한충수 의원=지역마다 빈부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발전의 장애 요소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문화가 들어와야 경제개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송영길 의원=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목격했다. 민족주의를 강조하면 후세인 정권 및 북한과 같은 독재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이라크는 스스로 독재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등이 착근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이라크인들은 후세인도 싫지만 미국도 싫다는 이중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은 유엔을 통한 재건이다. 이곳의 연합군도 유엔의 도움을 얻어야 테러에서 벗어날 것이다.

▶유정렬 이사장=이라크에 네번째 와보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꼈다. 독재정권에 시달려 피폐해진 이라크가 안타깝다.

▶전경만 박사=아무리 자원이 풍부해도 지도자의 통치철학 부족이 한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치안상황은

▶강의원=호텔에서 로켓포 공격을 당해 치안부재 상황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치안상황이 생각보다는 낫다. 헬기를 타고 이동하고 중무장한 미군의 경호 아래 지상에서 이동하면서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라크의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아주 우려할 정도의 치안부재 상황이 아님을 확인했다.

▶정의원=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삼각지대는 불안하지만 그 외 이라크 남북부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 같다. 대규모 교전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군의 사상자가 매일 발생하고 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고 특정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의원=치안상황이 지역에 따라 다르다. 이곳에서 한국 교민을 만나보니 바그다드 중심으로는 불안하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예상했던 것만큼은 아니다. 전쟁을 겪은 나라에 이 정도의 불안 상황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송의원=미군의 보호를 받고 이동해 이곳의 치안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제2의 베트남'이라는 일부 주장은 틀린 것 같다. 후세인 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미미해 연합군은 현재 이라크인들의 민심을 잡기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이사장=이라크 외부에서 유입되는 테러세력을 저지한다면 치안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전박사=호텔에서도 사설 경호요원이 기관총을 차고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불안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저항세력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테러공격을 하고 있다. 다른 지방은 상당히 안정돼 있다.

◇다국적군 활동

▶강의원=현재 이곳에는 33개국에서 온 군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나도 군인 출신이지만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각국 간 협력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큰 혼란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정의원=각국 부대를 방문해 보니 민사작전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확인했다. 전후 초기에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제는 민사작전을 통해 점차 이라크 전후통치에 적응해가고 있다.

▶한의원=점령군인 미군에 대해 반감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같은 반감은 후세인 추종세력을 비롯한 일부의 불만이다. 후세인 정권에 고통받던 대다수의 사람은 다국적군에 호의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다국적군에 대한 지지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송의원=미군의 주둔에 대해 이중적인 반응이 있다. 해방시켜준 것은 고맙지만 미군이 그냥 물러가지는 않으리라는 경계심이 팽배하다. 이라크인들은 주변국의 개입에는 확실하게 반대하나 한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호의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군이 파병되더라도 미군과 동질세력으로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현재 이라크인들은 이라크에 주권을 주겠다는 미국이 왜 유엔의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지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유이사장=미국이 뒤늦게나마 민사작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이를 시행하고 있는 게 다행스럽다. 미국처럼 직접적인 전후통치를 맡을 경우 민사작전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전박사=1991년 걸프전에도 23개국 다국적군이 참여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유엔 결의와 더불어 다국적군 활동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라크의 상황은 전쟁이 아니다. 결국 민사작전에 중점을 둬야 한다.

◇파병 반응

▶강의원=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바그다드 지역을 제외한 북부와 남부는 한국군의 도움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적절한 규모와 성격의 파병이 이뤄진다면 이곳 사람들과 한국의 국익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필요한 장비 및 물자를 직접 와서 보니 대규모 추가 파병은 우리에게 부담이 많을 듯하다. 적절한 규모와 성격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의원=현지에 와 보니 미국의 요청에 의해 소극적으로 끌려가기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파병을 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치안에서 일상생활까지 갖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라크인들에게 우리가 적절한 도움을 준다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번 파병을 한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이라크, 한.미 관계를 뛰어넘어 국제질서에 참여한다는 자세로 파병을 추진해야 한다.

▶한의원=주변국과 달리 멀리서 오는 한국군에 대해 이라크인들은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 한국 기업 및 서희.제마부대가 호평을 받으면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 와 잘한다면 국익과 한국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송의원=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라크인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한국군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 예로 이곳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은 추가 파병이 향후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파병을 할 경우 한.미동맹에 구속돼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보다는 자주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이라크인들에게 한국군도 이라크를 돕는다는 확실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현재 이라크 과도통치위도 한국의 파병을 권유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알카에다 등 과격세력들도 테러의 타깃으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한.중동 관계를 고려해 파병에 대한 '포장'을 잘해야 한다.

▶유이사장=국제정치 현실과 한.미 혹은 한.중동 관계의 두 가지 틀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방향으로 파병을 추진해야 한다. 미국과 이라크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국제질서에 기여할 수 있는 파병 규모와 성격이 결정돼야 한다.

▶전박사=파병은 국제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방향에서 결정돼야 한다.

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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