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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G10으로 <21> 대외 원조 인색한 무역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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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우리도 한번쯤은 올챙이 시절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많은 대외원조를 받았다. 그 도움으로 보릿고개를 넘기고 배고픔을 덜 느낄 수 있었다. 60년대 이후만 따져도 우리가 잘사는 나라에서 얻어 쓴 게 160억 달러가 넘는다. 빈곤을 벗어나 지금의 번듯한 나라로 서는 데 돈(ODA)보다 더 크게 도움을 준 게 있다. 바로 선진국의 시장이다.

선진국은 그냥 시장을 열어 우리더러 물건을 팔라고 한 게 아니다. 우리 물건이 하나라도 더 팔리게 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관세를 깎아주거나 아예 받지 않기도 했다. 직접 돈을 주는 것보다 우리 물건을 사주어 돈을 벌게 하는 게 우리가 자립하는 데 더 크게, 더 길게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71년 이후 우리가 받아온 이 관세특혜는 OECD(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받고 있다. 만일 선진국의 열린 시장과 관세특혜가 없었다면, 과연 옷가지 등 싸구려 저급 상품이나 만들던 우리 기업이 전자제품 등 고가의 고급 상품을 팔 수 있게 되었을까. 60년에 3000만 달러를 겨우 넘긴 우리 수출은 지난해 3000억 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우리가 배고플 때는 돈으로, 우리가 수출입국을 할 때는 시장으로 세계 경제 사회가 우리를 도운 것이다.

지구촌에 그토록 많은 도움의 빚을 진 우리는 어떤가.

경제나 무역규모로 세계 11~12위 하는 나라,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코앞에 둔 나라로서는 창피할 정도로 다른 나라를 돕는 일에 인색하다. 대외원조로 우리가 쓰는 돈은 소득의 0.1%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돈만 따진다는 선진국들도 못사는 나라들을 돕는 데에는 벌이의 0.33% 정도는 쓴다.

우리의 인색함은 무역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개발도상국 수출품에 대해 시장을 열고 관세를 낮추는 게 아니라 손사래 치기 바쁘다. 우리만큼 개도국 물건에 문을 걸어 닫고 있는 나라는 보기 드물다. 개도국의 싼 물건들이 들어오면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산물.섬유제품 등 개도국들이 주로 만드는 물건에 대해서는 무역장벽이 더 높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수출에 나서는 데 그토록 도움을 줬던 관세혜택도 옛날 우리보다 더 못사는 다른 나라에 주기를 꺼린다. 우리가 전체 수입하는 것 중에 특혜관세를 적용해 들여오는 것은 1% 안팎뿐이다.

이런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뽑은 게 혹시 '이제는 한국이 세계에 이바지할 차례'라는 은근한, 그러나 애절한 메시지는 아닐까.

나라 안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기는 하다. 경쟁력이 취약한 부문 또한 널려 있기도 하다. 그래서 '가난한 지구촌 이웃을 돕자'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만큼은 국제사회에 돌려주자'는 생각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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