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석 달만에 또 한국에 온 자크 아탈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그는 40여 권의 저서를 냈고,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전 세계적으로 600만 부 이상 팔렸다. 우리는 보통 그를 세계적 석학, 문명비평가, 미래학자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부른다. 그와 같은 '지적 유목민'에게 어울리는 마땅한 호칭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석 달여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아탈리는 오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비전 2030 국제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소가 주관하는 이 포럼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비전 2030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매일경제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왔던 것이 지난해 10월이다. 21세기 들어 그의 방한은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한국의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은 밝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번 방한을 앞두고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지금의 두 배가 되는 2025년께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고, 2050년께는 세계 최강국 대열에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정보통신.로봇.인터넷 등 미래를 선도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역량,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혁신능력, 문화적 역동성 등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처럼 아탈리에게 열광하는 국민도 드물다. 그의 저서 중 이미 열 권이 번역됐고, 대부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한마디라도 듣고 배우겠다며 앞다퉈 초청장을 보내오는 한국인들이 그로서는 놀라울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팬 서비스'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미래에 대한 그의 찬사는 듣기 민망할 정도다.

한국의 미래를 밝게 보는 사람이 아탈리만은 아니다. 지난해 초 '다이아몬드 딜레마'란 책을 쓴 독일인 타릭 후세인은 한국을 다이아몬드 원석에 비유했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부즈앨런해밀턴의 한국사무소 이사를 지낸 그에 따르면 한국은 빛이 나지 않으면 이상한 나라다. 이 책의 영어판 출간에 맞춰 어제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서평을 크게 실었다.

아탈리는 지난해 10월 출간한 '미래의 짧은 역사'에서 향후 60년 동안 세계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5000년 전 중동에서 시작해 지중해와 북해를 거쳐 아메리카로 옮겨간 세계의 중심이 현재는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러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향후 20~30년 내 미국이 쇠락하면서 그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그 후 세계는 한국.중국.일본.인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5개국과 호주.러시아.브라질.캐나다.남아공.멕시코 등 11개국이 주도하는 다극(多極)체제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이어 시장논리 앞에 국가.민족.도덕이 의미를 상실하는 '거대제국(hyper empire)'과 시장의 온갖 갈등이 분출하는 '대충돌(hyper conflict)'의 시기를 거쳐 '초국적 민주주의(hyper democracy)'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장밋빛 미래가 그냥 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보장제도, 외국인에 대한 폐쇄성, 저출산, 북한 문제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아탈리는 지적한다. 후세인은 정부 규제, 강성 노조, 재벌 중심 경제구조의 세 가지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한국이 찬란한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가 될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으로 끝나고 말지는 한국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아탈리의 오늘 연설이 기다려진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