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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방학 되돌려 주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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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초·중·고등학교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즐겁고 신나는 여름방학이어야 할 텐데도 학생이나 학부모나 즐겁고 신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입시는 한발 다가섰는데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와 함께 벌일 공부전쟁이 벌써 지겹고,자녀쪽에서 본다면 어떤 시달림을 받을지 걱정이 앞선다.
말이 방학일 뿐이다. 학교생활로부터 벗어나 몸과 마음을 살찌울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어른들 기억속의 방학이라면,우리 눈앞의 현실적 방학은 보충수업의 시작이고 입시가 한발 다가섰다는 신호가 될 뿐이다. 고학년은 고학년대로,저학년은 저학년대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뿐이다. 산수학원·영어학원엘 다녀야하고 학교생활보다 더 답답한 부모의 감시속에 무더운 여름을 공부속에서 보내야 하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적 방학이다.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는 것,학생들에게 방학의 본래 의미를 되살려주는 것,이것이 우리 교육이 당면한 현실적 개선 목표여야 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육의 당면과제가 아니겠는가.
왜 방학은 방학다워야 하는가. 일상적 학교생활로부터 벗어나 가정과 자연,그리고 사회속에서 교과서 외적인 것을 배우고 체험하는 것이 방학이기 때문이다.
규칙적이고 딱딱한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새로운 단련의 기회가 방학의 근본 취지다.
중년이상의 학부모들이라면 청소년기의 그 은성했던 여름방학의 소중한 추억들을 나름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삼국지·수호지를 열독하면서 무더운 여름밤을 지샜던 기억,논두렁·밭두렁을 헤매며 매미잡고 여치잡던 추억,동네 개울가에서 떼지어 멱감고 장난치던 장면들이 「여름방학」이라는 어휘와 함께 추억의 갈피속에서 생생히 되살아 날 것이다.
그런데 왜 자녀들에겐 그런 여름방학을 주지 않고 있는가. 어느 학부모 어느 학생이 방학의 본래 의미를 찾아 방학을 그때의 방학처럼 보내고 있는가.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려는 학부모나 학생이 있다면 비정상적 학부모나 문제학생일 뿐이라고 보는게 오늘의 우리 교육풍토가 되어버렸다.
대학 입학,곧 사회적 성공이라는 뿌리깊은 사회 통념이 교육체제를 왜곡시키고 있고 청소년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회상을 모두가 알면서도 그 끝없는 경쟁의 수렁에서 아무도 발을 빼려하지 않는다.
방학을 방학답게 보낼 수 있다면 학생은 학생다워질 수 있고 자녀는 자녀답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모두가 교육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우리의 교육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 까닭은 결국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야 한다고 큰소리 치면서도 아무도 이를 실천하지 않는데서 생겨난다.
학부모나 사회나 정부가 해야할 일은 방학을 방학답게 보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게끔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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