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무역적자↑ 중국과 무역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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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소형차 베르나(현지명 엑센트)가 동급인 일본 도요타의 야리스보다 비싸다. 2005년엔 베르나가 야리스보다 231달러 쌌다. 그 후 1년간 베르나는 1만3845달러로 1751달러 오른 반면, 야리스는 805달러 상승하는 데 그쳐 1만3130달러가 됐다. 엔저(低)로 가격이 역전된 것이다. 베르나는 경쟁 차종보다 5.2%(715달러)나 더 비싸 고전하고 있다. 사정은 쏘나타나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도 마찬가지다.

<표 참조>

올 들어 엔화는 달러 등 주요 통화에 대해 맥을 못추고 있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해졌다. 엔화 가치는 29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달러당 122.19엔으로 4년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난 주말 유로화에 대해서도 유로당 158.6엔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치 기록을 이어갔다. 원-엔 환율은 30일 전날보다 1.26원 오른 100엔당 773.3원을 기록했다. 엔화 약세가 한국 수출 경쟁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주범은 엔 캐리 트레이드=일본은 2002년 2월 이후 경기 확장이 지속되면서 과거 이자나기 경기(1965년 11월~70년 7월)를 능가하는 전후(戰後) 최장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무역흑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런데도 엔화가 약세인 것은 국가 간 금리 차를 이용해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 때문. 그중에서도 엔화로 돈을 빌려 고금리 국가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환시장에 엔화 매도가 늘고, 상대 통화는 매수세가 몰려 자연히 엔화가 약세로 흐르는 것이다. 문제는 당분간 엔 캐리 트레이드에 제동이 걸리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은행(BOJ)이 초저금리를 손대지 않고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금리를 동결하는 쪽으로 굳어져 가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해외 투자 붐도 한몫=일본 가계가 2005년부터 해외에 뭉칫돈을 투자하는 것도 엔저 원인으로 지목된다. 삼성경제연구소 구본관 수석연구원은 "경기 회복에 따라 일본인들의 투자 심리가 호전되고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개인들의 해외 간접투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과거에도 경기가 좋아지면 해외 자산 매입을 늘려 오히려 엔화 약세를 초래하는 경우가 흔했다. 경기가 좋아지면 주가 차익을 노린 외국 자본이 유입돼 그 나라 통화가치가 오른다는 경제학의 상식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국제 반발 부르는 엔저=일본 기업들은 신바람이 났다. 도요타의 경우 엔저에다 판매 호조로 지난 3분기(2006년 10~12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4% 늘어난 5500억~6000억 엔에 달할 전망이다.

엔 약세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쪽은 유로권이다. 유로권의 대일 무역적자가 한 달 평균 178억 유로(230억 달러가량)씩 쌓이는 데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로권 13개국 재무장관들은 29일 회담에서 엔 약세에 우려를 표명하고 선진 7개국(G7)과 공조해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미 재무부는 이날 일본의 통화정책이 "바람직하다"며 사실상 묵인하는 분위기다.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 기업=엔 약세로 일본 기업이 훨훨 날고, 중국은 제한된 변동환율제하에 저평가된 위안화로 미국 등에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다. 한국만 샌드위치 신세다. 고질적인 대일 무역적자는 심화되고, 대중 무역흑자도 지난해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은 "정부가 해외펀드 비과세와 해외 부동산 취득 규제를 완화했지만 엔화.위안화에 대한 원화의 상대적 강세를 잠재우기 쉽지 않다"며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 60억 달러보다 훨씬 줄어든 20억 달러 남짓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환율 변동에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KOTRA 동북아팀 우상민 책임연구원은 "기업들도 해외 생산을 확대하고 비가격경쟁력을 강화해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희.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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