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핵심 2명 돌연 잠적/열쇠쥔 박용택·박명자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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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자금총책·박 교주 이복동생/박용택씨/숨진 노씨 부인… 어제 사라져/박명자씨
오대양사건 해결의 열쇠로 지목돼온 전 오대양 총무과장 노순호씨가 11일 암매장시체로 발견됨에 따라 사건 당시 전무였던 박용택씨(38·숨진 박순자사장의 이복 동생)와 숨진 노씨의 부인 박명자씨(35)가 새로운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오대양관련 생존자중 사건당시와 전후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핵심 생존인물로 김도현씨 등의 집단자수와 함께 잇따라 잠적한 상태다.
전무 박씨는 85년 4월 오대양 대전본사 사무실에서 가정부 황숙자씨가 자수한 심해연씨(25·여)등 7명에 의해 집단폭행당해 숨지자 자수한 김씨 등과 함께 황씨의 시체를 암매장한 것으로 밝혀져 11일 지명수배됐다.
경찰은 특히 전무 박씨가 사건당시 (주)오대양의 자금관리와 회사운영에 깊이 관여,사건의 배경과 증발된(?) 사채 1백70억원의 행방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연고지에 형사대를 급파했으나 12일까지 행방을 캐지못하고 있다.
경찰은 숨진 노씨의 부인 박씨도 노씨가 총무과장으로 재직중 오대양에 함께 근무,회사운영의 중요부분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용택씨=자수한 김도현씨 등에 따르면 박씨는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이후 한동안 자신들과 공동생활을 했으며 최근까지 자주 연락을 취해 함께 자수하기로 했으나 나타나지 않아 일련의 폭행치사가담자중 유일하게 자수를 하지 않고 행방을 감춘 인물.
박씨는 80년대초 형과 함께 미얀코리아라는 수입품상을 경영하며 한때 이복누나인 박순자씨를 대전지사장으로 영입하기도 했으나 회사가 망하자 누나 박씨가 시작한 오대양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오대양사건직후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으로 이사,부인(38)및 1남1녀(11,10세)와 함께 생활해오다 89년 10월 가족들을 강원도 동해시로 이사시키고 자신은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경향아파트13동 동서 권모씨(29·회사원)의 집으로 주민등록만 옮겨놓은채 떠돌이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권씨는 당시 박씨가 찾아와 『사정이 있으니 주민등록만 옮기게 해달라』고 부탁해 들어줬을 뿐 함께 산적은 없으며 4∼5달에 한번꼴로 찾아오긴 했으나 거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오대양의 채권단 사이에선 박씨가 사라진 사채 1백70억원중 상당액을 빼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으나 권씨는 박씨가 사건이후 한때 남대문시장에서 수입품가게를 했다가 최근에는 놀고 있는 것 같았으며 생활이 곤궁한 것 같았다고 밝혔다.
◇박명자씨=87년 8월16일 채권자 이상배씨를 이번에 자수한 김씨 등과 함께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난뒤 지난해봄부터 서울동대문지하상가에서 수입코너상인 현대수입상가를 운영해왔다.
박씨는 김씨 등의 자수소식이 보도된 11일 11살난 딸에게 『미국으로 물건을 사러간다』는 말을 남긴채 가게문을 닫고 자취를 감췄다.
박씨는 석방직후 인천에서 살다 3개월쯤전 서울 삼성동의 연립주택 지하셋방을 얻어 이사,딸과 단둘이 살아왔다.
이웃 점포종사원들에 따르면 박씨는 평소 말이 없어 이웃 상인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남편 노씨에 대해선 『외국에 나가있다』고만 말해왔다.
박씨는 남편 노씨가 서울 모은행지점에 근무하다 대전으로 전근한 84년 자신이 다니던 기독교 모교파교회의 소개로 오대양에 먼저 입사해 열정적인 활동으로 숨진 박사장의 신임을 받았으며 뒤따라 입사한 남편 노씨와 함께 재정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노씨가 숨지기 직전인 87년 8월초 오대양을 도망쳐 상경한 노씨에게 『오대양을 떠나지 마라』고 설득,대전으로 데리고 가기도 했으며 노씨가 실종(폭행치사를 당해)된뒤 노씨가족들이 남편의 소식을 물으면 『걱정마라』『잊고 싶다』는 등 이상한 대답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이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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