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주 지시로 3명 살해”/자수 7명 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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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규율 어겼다고 폭행후 암장/4년전의 집단 교살사건은 남자들이 차례로 해치운 것/“전경환씨 부인 회사 자주왔다는 얘기 들었다”
【대전=특별취재반】 지난 87년 8월29일 경기도 용인에서 32명이 집단 변시체로 발견된 오대양 사건 당시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진 황숙자씨(당시 39세·여·오대양 기숙사 가정부)등 3명은 오대양 대표인 박순자씨(당시 48세·여·사망)의 지시에 따라 같은회사 직원 김도현씨등에 의해 살해돼 암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살해 및 암매장에 직접 가담했던 당시 오대양 관리부차장 김도현씨(38·서울 증산동 174의 8)와 김강규(31·서울 등촌동 653의 13),이세윤(45·서울 답십리1동 152의 5),문윤중(서울 답십리5동 294의 72),한호재(38·경기도 안산시 이동 433),오민철(34·서울 마천동 17의 17)씨 등 직원 7명이 10일 충남도경에 자수해옴으로써 드러났다.
◇진술내용=이들은 경찰에서 지난 86년 대전시 가수원동에 있는 오대양 구내식당에서 육아원보모 조재선씨(당시 36세·여·약사)를 회사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회사대표인 박씨등 30여명이 집단폭행해 숨지자 당시 충남 대덕군 산내면 하소리(현 대전시 하소동) 농장 부근에 암매장한 것을 비롯,87년 오대양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황숙자·노순호씨(당시 32세·오대양 총무과장)등 3명을 『버릇이 없다』는 이유로 집단폭행한후 숨지자 같은장소에 암매장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대양 직원 32명의 집단 변시체가 발견된 87년 8월29일 당시에는 채권자 폭행사건으로 구속중인 상태였으나 자신들의 오대양 생활경험으로 미루어 3명의 살해 암매장 사실이 회사안에 알려지고 대표 박씨가 오대양의 부채를 감당할 길이 없게되자 박씨의 지시로 남자직원들이 여자직원들을 집단 교살하고 뒤따라 자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살해,암매장 사건에 가담한 직원이 몇명 더 있으나 자수를 결심하고서도 경찰에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자수자중 김도현씨는 오대양 집단변사사건 경위에 대해 『남자들이 2장에서 끈을 올려달라고 해 이불보를 찢어 올려준뒤 여자들의 비명이 났었다』는 이야기를 출소후 생존 오대양 직원으로부터 들은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대양 배후에 당시 권력층의 비호세력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전경환씨 부인이 회사에 자주 왔다는 이야기와 대표 박씨가 「빽」이 많다는 말은 들었으나 구체적인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87년 1월 박형심씨(당시 37세·자수자 이세윤씨의 처)가 암으로 죽자 사망신고도 없이 같은 장소에 암매장 했다고 진술했다.
◇자수동기=이들은 경찰에서 노씨 등 3명을 살해,암매장 한 것은 회사대표 박씨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그동안 양심의 가책을 느껴 서로 상의한 끝에 자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건후 최근까지 자주 만나 오대양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왔으며 지난해 6월 김씨가 자수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고 택시운전사인 박씨와 문씨에게 동참할 것을 권유했으며 한씨등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연락,함께 자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씨는 최근 자신이 몰던 택시가 잇따라 사고를 당해 『오대양 사건 희생자들의 원한이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김씨는 당시 이 사건에 관련됐던 여직원 7∼8명도 곧 자수할 것이라고 밝혀 이들이 지금까지 서로 긴밀히 연락이 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자수자 주변=이세윤씨와 동거중인 전오대양직원 김영자씨(44)는 사건 직후 서울로 올라와 파출부로 일해오다 87년말 생존자끼리 연락이 돼 청계천 삼일아파트를 보증금 1백만원에 세내 5명이 함께 살아왔으며 그후 오대양 직원으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더 모여 15명이 공동생활을 했고 이씨도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파출부·공장일 등을 하면서도 오대양 시절과 같이 엄격한 규율속에 살아왔다.
89년 이들은 상당한 자금을 모아 서울 수유동 인수중학인근에 가내공장을 공동운영 하기까지 했으나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 나가기 시작,이씨·김씨도 89년 4월 서울 답십리동에 50만원짜리 방 한칸을 얻어 독립했다. 이씨는 그후 고려택시에 취업,운전기사로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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