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지문 등 정보 담은 '생체 신분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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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영국이 외국 노동자들에게 점점 더 깐깐해지고 있다. AP통신은 영국 정부가 자국에서 일하려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생체정보를 담은 신분증을 반드시 가지고 다니게 하는 법안을 최근 의회에 제출했다고 28일 보도했다. 존 리드 내무장관은 "이 법안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을 확실하게 물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내년부터 영국에 새로 오거나 체류 연장을 원하는 은행원.배우.요리사 등 외국인 노동자는 생체정보 신분증을 발급받고 이를 휴대해야 한다. 신분증을 발급받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는 최대 1000파운드(약 180만원)의 벌금을 물거나 영국에서 쫓겨나게 된다. 단 유럽연합(EU)과 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는 생체정보 신분증을 발급받지 않아도 된다. 공공정책연구소(IPPR)에 따르면 현재 영국에서 불법으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정부는 정확히 몇 가지 정보를 신분증에 입력할지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BBC방송은 "사진.지문뿐만 아니라 최대 60가지 정보가 신분증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국경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제출된 이 법안에는 인신매매 단속처럼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항도 있다. 리암 번 이민차관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악덕업자 밑에서 일하는 경우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이러한 조치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이민자의 선별 수용'이라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프랑스를 뒤따라 가는 모습이다. 2005년 말 무슬림(이슬람교도) 이민 자녀가 중심이 된 소요사태를 겪은 프랑스는 지난해 강도 높은 불법 이민자 추방정책을 실시했다.

영국은 영주권(영구노동 허가) 신청자도 시민권 신청자처럼 영어 구사 능력과 영국 생활에 대한 지식을 검사하는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안을 이미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 왔다. 지식시험에는 성공회 수장은 누구인가, 여왕의 공식 역할은 무엇인가 등 영국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이 포함된다. 영어 구사 능력은 물론 영국 사회.문화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만 영주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생체정보 신분증을 발급하는 것을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신분증 반대 운동단체인 'NO2ID'의 간부인 필 부스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생체정보 신분증을 발급하는 것은 앞으로 전 국민에게 이를 적용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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