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당은 손 못대고 기업만 족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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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검 중앙수사부가 그제 LG홈쇼핑 본사 사무실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여 회계자료 등을 압수하는 등 대선자금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LG그룹의 구본무 회장도 조만간 불러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수사 대상에 오른 기업체 임직원들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우리가 거듭 지적했듯이 정경 유착의 검은 고리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 개혁의 목표이자 깨끗한 정치 실현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이번 기회에 불법 대선자금을 철저히 규명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기업인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다고 검찰 수사로 기업활동이 마비될 정도라면 국익을 위해 결코 바람직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기업인 소환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이유다.

검찰이 기업체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에 나선 1차적 원인 제공자는 바로 정치권이다. 석고대죄하겠다던 한나라당은 수사에 별로 협조하지 않은 채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고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재정국 간부 2명은 행방이 묘연하고, 재소환받은 국회의원도 출두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선자금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하겠다던 열린우리당은 "우리만 공개하면 역공을 당할 것이 뻔하다"는 이유로 입장을 번복했다. 사정이 이러니 검찰로서야 돈을 준 기업체 압박에 나선 게 아니겠는가.

검찰이 범죄 혐의를 입증할 자료가 있는 곳을 압수수색하고, 혐의가 있는 사람을 소환하는 것은 당연하다. LG홈쇼핑의 경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압수수색했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압수수색이나 소환이 수사 편의를 위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쳤다는 의심을 받아선 안 된다. 정당처럼 힘있는 곳과 상대적으로 약한 기업체가 당사자인 때는 더욱 그렇다.

검찰은 기업총수 소환이나 기업체 압수수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정치권은 이번 수사로 수반될 기업활동 위축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