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안한 식탁’ 언제까지…] 上. 학교 급식은 식중독 온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식품 관련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선진국을 지향하는 나라에서 아직까지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독극물에 가까운 화공약품을 음식에 사용하거나 음식 찌꺼기가 식탁에 버젓이 오르기도 한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 중 믿을 게 없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위생불감증 탓인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인가. 식탁 안전이 위협받는 현장과 대책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한다.[편집자]

지난달 중순 서울 S고등학교 점심시간. 배춧국에서 무당벌레가 나오자 학생들이 기겁을 하면서 숟가락을 던졌다. 이달 초에는 닭도리탕에서 다리는 없고 대가리가 나온 적도 있다.

이 학교 2학년 崔모(18)군은 "반찬에서 철 수세미 조각이 수시로 나올 정도로 불결해 매점에서 사먹는 경우가 많다"면서 "점심을 먹고 나면 배가 약간 아픈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 급식이 위험수위를 넘었다. '식중독의 온상'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올 들어서도 학교 급식 사고가 지난 5년 평균보다 두배나 늘었다. 9월 말 현재 학교급식에서 발생한 식중독 사고는 48건으로 모두 4천5백6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전체 식중독 환자(7천6백45명)의 60%를 차지한다.

정부가 수시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급식업체와 학교의 유착, 낮은 단가로 인한 하청 먹이사슬, 단속 기술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유착의 고리=급식업체 사장이 5년간 교직원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최근 폭로한 서울 O고교와 K고교. 비리가 음식의 질 저하로 이어지면서 학생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았다.

"김치에서 바퀴벌레가 나온 적도 있다""식판과 컵이 하도 더러워 밥맛이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급식표에는 오렌지 주스가 나온다고 돼 있는데 요구르트가 나왔다. 바나나는 3분의 1조각이 나온다".

18일 하교길에 만난 이들 학교 학생이 불만을 쏟아냈다. 이 학교는 급식률이 70~80%에서 폭로 후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인근 편의점의 삼각김밥과 컵라면 매출이 두배로 늘었다.

한국급식관리협회 임채홍 회장은 "상당수 학교들이 교직원들의 오전 간식으로 죽이나 샌드위치를 준비하라거나 식사 질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의 급식비에서 돈을 떼어내 교직원 식사 재료비에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중등학교의 경우 교사들이 학생들보다 더 나은 질의 식사를 따로 하기 때문에 취약한 급식 실태를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급식업체의 과당경쟁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 6월 울산의 식자재 납품업체 다섯곳은 9개의 초등.중학교에 젖소고기를 한우로 속여 납품하다 당국에 적발됐다.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30여군데의 업체들이 난립해 내정가의 39%에 낙찰받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적발이 어렵다=식중독이 발생하지 않으면 현장을 잡기 힘들다. 품질 저하를 참다 못한 학부모들이 나서기도 하지만 육안검사 정도에 그친다.

17일 오전 7시30분 서울 B중학교. 학부모 네명이 조리실을 방문해 이날 점심 때 사용할 음식 재료 검사에 들어갔다. 마카로니 국수와 옥수수 통조림.마요네즈 등의 유효기간을 확인하고 파.양배추 등 야채가 시들지는 않았는지 들춰봤다. 포장김치를 한 조각 꺼내 먹어보고 닭고기 냄새를 맡아보는 것으로 검사는 끝이었다.

식재료를 배달하는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기 싫어 조리실 입구에 설치된 소독용 발판을 딛지 않는 점도 지적하지 못했다.

서울 관악구 S초등학교의 한 학부모는 "충북 진천의 김치공장에 갔을 때 양념이 고체여서 중국산으로 의심이 갔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감독 관청인 교육청이나 지자체의 위생검사도 문제다. 최근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이 자주 생기고 있지만 위생검사를 할 때 미생물 검사에 바이러스 항목이 없다. 이들도 육안검사나 온도측정, 유통기한 확인 등에 그치는 실정이다.

◇과도한 초기 설비투자=교육 당국이 권장하는 급식 한끼의 단가는 2천2백~2천6백원. 이 금액에서 적정 이윤을 뺀 돈을 재료비에 쓰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서울의 한 급식업체 사장은 "위탁급식업체들은 학교와 계약하면서 조리시설 등에 3억~5억원 가량의 설비를 투자한다"면서 "급식비에서 투자비와 인건비 등을 제하면 한끼 재료비가 1천1백~1천2백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업체들은 시설사용료 명목으로 연간 1백만~2천만원을 내는데다 각종 후원금까지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고는 올해 9천2백만원의 시설사용료를 부담시켰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하청-재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 5월 어린이날 특식으로 생크림 케이크를 먹고 3백여명의 학생들이 집단 식중독에 걸렸다. 이 학교의 식재료 납품을 맡은 업체가 대구의 S식품에 하청을 주고 S사는 소규모 제빵공장에서 납품받았다. 이 영세공장의 위생시설이 불량해 생크림에 식중독균인 살모넬라균이 감염됐다.

특별취재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건강팀), 신성식.이지영.권근영 기자(정책기획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