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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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의지를 읽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은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 호소, 야당 예비후보 폄하 등 정파적 언행을 거듭했다. 야 4당이 일제히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 의무 등)를 위반한 것이라고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대통령에 대한 정치 중립 요구는 법.사리에 안 맞다'는 반박 논평을 내놨다.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적 도발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노 대통령은 2004년 4월 총선 때도 열린우리당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발언으로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경고를 받았다. 탄핵이 발의된 한 원인이다. 그러고도 반성은커녕 또다시 비슷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이유가 뭔가. 탄핵 역풍이라도 다시 만들어 보겠다는 건가.

청와대 측은 "저와 열린우리당을 결부하지 마시고 좀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한 말이 당원을 향한 것이므로 정당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중립 의무를 지닌 대통령이 아니라 정당인으로서의 자격으로 한 말이라는 것이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그렇다면 신년 기자회견을 열린우리당 수석당원 자격으로 가졌다는 말인가. 한 달에 네 번씩이나 지상파를 독점한 것이 대통령이 아니면 가능한 일인가.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규정해 놓은 것도 그런 특권을 정치적으로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닌가.

노 대통령은 개헌 말고도 앞으로 계속 선거 쟁점이 될 정책과제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야당후보가 반대하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정책과제들을 입안하고, 그것을 야당 대선후보를 공격하는 무기로 삼겠다는 말이 아닌가. 대통령이 이 이상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할 수가 있는가. 공무원을 동원해 만든 정책은 대통령 개인이나 소속 정파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자산이다.

제발 정치에서 손을 떼고 민생에 전념해 주기 바란다.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금개혁은 다음 정권에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이것만 마무리하기에도 힘이 벅차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