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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한·미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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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1월 협상을 시작하면서 야심적으로 설정했던 협상 마감 시한은 지금 와서 보면 너무 촉박한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길었다.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정치적 덫에 걸릴 시간적 여유가 너무 많았다. 한.미 FTA 타결을 위한 기회의 창은 빠르게 그리고 영원히 닫히려 하고 있다.

미국엔 한.미 FTA가 북미자유협정(NAFTA)에 이어 최대의 FTA가 될 수도 있었다. 한국은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동맹국 중 하나다. 한국에 FTA는 1997년 발생한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와 통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또 FTA는 군사동맹 위주의 한.미 관계를 경제.사회로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난해 11월 미국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하고 민주당이 승리한 정치적 변화로 FTA의 미 의회 통과는 더 불투명해졌다. 민주당 내부에 보호무역주의적 목소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중간선거에서 패한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한.미 FTA 협상에 투입할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한국은 미국과 FTA를 추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미국과 FTA를 우선 체결하고 이 FTA를 모델로 아시아 주변 국가와 FTA를 맺으려는 전략은 한국 기업들에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21세기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한.미 FTA 체결 여부에 관계없이 한국시장엔 상당한 부담이었다. 세계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한국은 자유무역을 체결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한국 내의 반대 여론은 거세져만 갔다. 청와대가 FTA 지지 입장을 수차례 밝혔지만 노무현 정부의 전직 장관들마저 협상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한.미 FTA가 가져다줄 많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한 자리에 머물고 있는 노 대통령이 한.미 FTA 인준에 필요한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군다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나 민간 부문의 영향력 있는 집단 중 그 누구도 FTA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다. 어떤 FTA라도 그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되는 부문과 손해를 보게 되는 부문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부는 경제 자유화로 피해를 볼 계층의 우려를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FTA로 인해 위협받는 경제 부문을 지원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정책 패키지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농업 등 국내 취약 부문이 이 정책 패키지로 어떤 혜택을 받을 것인지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FTA로 인한 잠재적 '패자'들에게 어떤 지원을 할지가 한국 정부의 FTA 처리 의지를 말해 주는 '바로미터'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FTA 협상이 실패할 경우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또 FTA 협상의 성패 여부와 관계없이 이 이슈가 한국 대선을 앞둔 해에 제기됐다는 점은 한국이 자신의 정치적 실패를 미국 탓으로 떠넘기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만일 어느 한쪽의 정치적 실패로 인해 FTA 타결이 무산된다면 이는 한.미 동맹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
정리=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