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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깊고도 깊은 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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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오뉴월 더의 속에서 주식시장은 냉랭하기만 하다. 일반매수세가 조금씩 살아나는 조짐도 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약세권을 못 벗어나고 있다.
상장주식전체의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종합주가지수가 맥을 못 추고 있다. 26일 현재 주가지수는 5백97.
작년말(6백%)보다 14·2%떨어진 것이며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던 89년4월1일의 1천7에 비해서는 하락률이 자그마치 40·7%에 달하는 것이다.
89년말 95조원을 넘어섰던 주식시가총액은 현재 70조원으로 줄었다.
주식시장의 이같은 침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오르면 오르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이유가 있게 마련인데 2년3개월간이나 지속되고 있는 장기하락국면은 무엇 때문이며 주식시세는 언제쯤 다시 날개를 달수 있을 것인가.
근인으로는 우선 증시에 주식 살 돈이 말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고객예탁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지난 21일 현재 25개 증권사에 예탁돼 있는 주식매입대기자금은 8천8백억원으로 주저앉았다. 올들어 가장 많았던 1조7천6백억원 (1월22일)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준 것이며 사상 최고 수위를 보였던 89년3월의 2조8건4백억원에 비하면 고작 3분의1수준이다.
빠져나간 고객예탁금은 어디로 갔을까.
침체초기에는 신도시아파트와 개발예정지역 등 부동산으로 빨려들었으며 최근엔 채권·CD (양도성 정기예금증서) 등 고수익금융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89년 부동산가격 상승은 하락국면에 접어든 증시자금을 빼 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후 대폭 강화된 투기억제책에 힘입어 최근 부동산시장은 안정세를 보이고있지만 증시로서는 이것도 마땅찮다. 부동산 거래자체가 뜸해지면서 잠긴 돈이 되돌아올 기회를 잃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증시상황으로 봐서는 돈이 부동산을 벗어나더라도 증시로 환류 된다는 보강이 없다. 청약예금순위에 관계없이 실시된 지난달 원당읍 성사지구 1천여 가구 아파트분양에 무려 5건5백억원의 현금이 사흘새 몰려들었다. 돈 되는 것은 역시 부동산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해 있다는 증거다.
이와함께 통화정책이 긴축기조를 유지함에 따라 상승일로를 치닫고 있는 최근의 금리동향은 주가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3년짜리 회사채수익률이 연 19%선을 웃돌고 있으며, 금리자유화시대에 발맞춰 속속 선보이고 있는 연리 20%선의 고수익 상품은 증시자금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투자규모가 5백만원 이하인 소액채권거래가 올들어 5월까지 작년동기보다 28배나 늘었으며, 최근 CD에 몰러드는 자금규모는 하루 수백억원에 이를 때도 있다. 증시가 언제 되살아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20%안팎의 확정금리를 팔 수 있는 쪽으로 돈이 몰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침체증시의 지속은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기능을 스스로 상실시키고 이로 인한 자금난은 고금리 추세를 가져와 다시 증시자금을 빼 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투자자들이 주식투자에 염증을 느끼고 아예 증시를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2년간 약1백만명의 투자자가 증시를 떠나 지금은 2백만명 선으로 추산된다.
투자심리가 이처럼 냉각된 상태에서는 북한의 유엔가입방침 발표나 민자당의 광역의회의원선거압승과 같은 대형호재도 먹혀들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역시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건설·서비스부문이 달궈놓은 경기과열 속의 제조업 부진 현상이다. 또 86∼88년에 주식시세가 워낙 올랐던데다 그 이후 주식물량공급이 과다했던 것도 큰 요인이다.
86∼88년 중의 두 자리 수 성장이 89년을 고비로 꺾인 후 곳곳에서 불안조짐이 가시지 않고 있다. 고물가· 무역적자· 과소비현상이 그것이다. 건실한 경제성장에 대한 확신이 안서는 상황에서의 주가상승기대는 애당초 무리다.
89년4월 이전까지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다는 지적은 어느 수준이 적정 주가냐는 물음에 부닥치지만 86∼88년 중 평균 주가상승률이 무려 4백63%에 달한 사실로 보아 주식시장에 이른바 「물거품현상」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활황강세 때 쏟아 부있던 신규상장·유무상증자· 우선주 등 주식물량은 대주주와 기업들만 살찌웠을 뿐 그 이후 침체국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앞으로의 증시에 대한 전망도 속시원한 것은 없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수준이 바닥권이라는데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 산다면 손해보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앞으로 주가가 얼마나 오를지에 대해서는 「주가는 주가만이 안다」는 말로 대신한다.
다만 올 연말께 주가지수는 「보수적」으로 보아 7백50선에는 이를 것이라는 조심스런 견해가 비교적 많다. 동서증권이 최근 뉴욕· 동경·런던·홍콩의 증권관계가 1백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서울증시는 연말로 갈수록 상승세를 타 8백선 안팎에 이를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에 가까웠다..
증시전망에 비교적 낙관적인 사람들은 무역적자가 줄고 물가상승세가 잡히는 등 경제여건이 호전되고 있다는 점을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여기에다 그동안의 하락행진결과 현재의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 이하로 떨어졌다는 점도 강조한다. 낮은 주가만큼 매력적인 재료가 있느냐는 것이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외국인 주식투자도 호재다. 1조∼2조원의 자금이 해외에서 유입되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최근 6백선이 재차 붕괴되는 상황에서도 매물이 폭주하는 이른바 투매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 주식을 팔 사람은 이미 팔아버려 매물이 쏟아질 여지가 그만큼 없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말은 뒤집어보면 기관투자가들이 그만큼 주식을 목에 차도록 떠맡고 있다는 것과 같다. 투신·증권사·증시안정 기금 등이 기관투자가로서의 기능을 상실, 작은 매물도 소화해내기 힘들다는 얘기인 것이다.
기관들의 운신 폭과 시중자금난의 완화여부는 향후 강세에 최대 변수다. 현재 투신사와 증권사가 분에 넘치게 안고 있는 6조∼7조원의 주식은 어느 시점에선가는 매물로 나을 수밖에 없으며, 이 점에서 주가가 고개를 들때 이들의 주식운용전략은 더 없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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