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없어 쩔쩔매는 중소기업/김경동(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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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봐,김교수,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망해. 우리 대신 신문에다 글이라도 좀 써주게나. 답답해 죽을 지경이야.』 지난 보름남짓한 기간에 차례로 만났던 동창들이 이구동성으로 호소한 한 마디다. 주로 시도의원 선거를 둘러싼 정치 풍토와 근자에 심각하게 어려워진 경제 사정이 화제에 올랐고,그럴 때마다 하나같이 입에 거품을 물고 격분하는 분위기에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이 글을 쓰거니와,피부로 느끼기에 훨씬 더 절박하고 시급한 경제문제에만 국한시키고자 한다.
○일 싫어하는 근로자들
모두가 사업이라고 벌여 놓고 허덕이는 중소기업인들인 친구들의 가장 큰 고충은 역시 「사람」문제로 귀착한다. 돈을 주고 쓰려해도 인력이 없다.
사람이 없는게 아니라 일할 사람이 없다. 일하러 온 근로자들도 일에는 생각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쏠린다. 온갖 요구를 하는 데에는 그처럼 당당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일은 열심히 하려 하지 않으며,일에는 성의가 담기지 않아 품질관리가 소홀하다.
어쩌다가 사장이나 감독자가 정성껏하라고 한마디 하면 퉁명스럽게 응수한다는 말이 그럼 사장이 직접 해보시지 그러우 하는투라 「말도 못하고 산다」는 푸념이 한숨에 섞여 나왔다. 힘든 일을 하기 싫으니까 생산직의 이직률이 높아졌고,하기쉽고 수입이 나은 업종으로 몰려가는데,대개는 일에 대한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뿐더러 젊은 사람들에게는 장래가 없는 서비스업종과 유흥업종으로 빠진다.
한편,지난 몇해동안에 치솟아 오른 임금의 생산비 효과는 큰 기업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생산단가중 인건비가 가령 8백원 먹히던 제품이라면 요즘은 3천8백원으로 껑충 뛰어 올랐다. 이 부담을 줄여 생산비를 절감하는 방법이래야 기술개발,품질향상 및 생산성 제고 밖에 뾰쪽한 수가 없는데,기술개발은 자금과 인력을 요하고 근로자들의 생산성이나 품질관리는 엉망이니 중소기업이 될 턱이 없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거기에 이데올로기의 계급의식이 끼어들어 기업주를 「적」으로 낙인 찍고 무슨 일이나 투쟁으로 끝장을 보려는 태도가 급작스레 번졌다.
결국 수출 자유 지역에서 공장을 경영하던 한 친구는 그 곳의 8할이상 기업이 아예 문을 닫고 떠나는 바람에 자기도 폐업하고 이제는 만주에 사는 동포들을 상대로 다시 사업을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 자기의 동업자들 대다수가 이미 인도네시아등 동남아로 옮겨 앉아 장사를 새로 시작했다. 또 다른 친구는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니 외국의 싸고 부지런한 노동력을 수입해 오도록 여론을 조성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남겼다.
○제조업의 공동화 걱정
그래야 경쟁력이 생겨 우리 젊은이들도 일을 다시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기업이란 계속 확장해야 기업도 살고 고용기회를 늘리므로 나라경제에도 기여하는 법인데,지금은 축소하거나 폐업하는 회사가 더 많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날로 느는게 현실이므로 조만간 실업이 늘고 제조업의 공동화가 일어나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이 불을 보듯 명백하다. 이래가지고서는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는 커녕 기껏해야 과거 어려웠던 시절의 악순환이 되돌아 올 우려마저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뿌리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한 친구는 진지한 자세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는데 귀기울여 봄직해 간추려 소개한다.
우선 젊은이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이유를 분석하면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문화에는 「내집마련」이라는 항목이 가장 큰 무게를 갖는,좀 특이한 요소가 있는데,그 사이 어떻게 경제운용을 했는지 이제는 평생 죽도록 일해 저축해 봐야 집마련은 애시당초 글렀다는 허탈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말았다.
그럴 바에야 힘 안들이고 돈벌이 할 수 있는 데로 가지 왜 힘들게 사느냐 하는 것이 지배적인 태도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 뿌리부터 바로잡는 시책을 펴야 한다.
○내집마련에 너무 큰 짐
젊은 근로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자면 소규모의 서민 주택을 많이 건설해 장기 분할식으로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고,제조업 부문의 장기 근속자들에게는 주택 분양을 비롯해 근로 소득세의 특별 감면등 직접적인 혜택을 줌으로써 우대하는 풍토를 조장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한편,서비스업,특히 유흥업소에 대해서는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소득 관리를 철저히 해 중과세하는 정책의지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 기업도 동참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과 제안에 대해 근로자나 정부나 대기업에서는 각자 나름대로의 견해가 있을 것이며,그러한 문제가 우리의 경제에 어떤 함축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의 의도는 우리 국민 각계각층이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할 만한 자료를 있는 그대로 제공하는 데 있을 따름이다.<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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