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냉소…신년연설중 10여회 '노무현식 유머'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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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3일 밤 청와대에서 신년특별연설을 통해 참여정부 재임 4년의 각종 정책을 평가하고 남은 임기의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히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신년 연설에서 특유의 직설 화법에 자조와 비꼬는 투의 유머를 얹었다.

노 대통령이 이날 연설회장인 청와대 영빈관으로 들어서자 청와대 출입 기자들과 정부 관계자, 그리고 청와대 직원들이 주를 이룬 관중이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이들에게 착석을 권유하며, 그렇지 않으면 박수를 멈추지 않을 셈이냐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여기 노사모만 모인 모양이죠?"라며 자조 섞인 농을 건넸다. 참여 정부의 실적을 거론하기 시작할 때도 "아니, 참여 정부도 실적이 있느냐 하시는 분도 있지만"이라며 서두를 꺼냈다. 모두 관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실상을 설명하면서 예정에 없던 '골병'이라는 말을 쓰게 됐다. "일전에 막말을 썼다가 호되게 당했는데, 골병이라는 말은 써도 되겠습니까"하는 말을 하고는 씩 웃었다. 직설 화법을 비판하는 언론을 의식한 말이었다. 연설 후반부에는 "새발의 피라는 말은 써도 됩니까?"라고도 했다. 이 역시 막말이라고 비난하는 언론을 비꼬는 발언이었다.

노 대통령은 또 2004년 경제 위기론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반박에 대해 야당과 언론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난했을 때를 되돌아 보면서, 자신이 "떡이 됐다"고 했다.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밤낮없이 맞는 게 제 일이지만 당시는 국민도 때립디다." 그 해 우리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외국인들만 사들였는데, 그 이듬해에는 주가가 크게 올라 외국인만 큰 돈 벌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이 손해본 만큼 (경제가 위기라고 한 야당과 언론이) 물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연설 말미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유머'를 빠뜨리지 않았다. '주몽'을 포함한 인기 드라마 시간대에 연설을 한 것이 계면쩍은 듯, "여러분이 기다리시는 드라마는 곧 이어 방영될 것입니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이 날 노 대통령의 말처럼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드라마 방송 시간이 늦어지자 오늘(24일) 아침부터 인터넷에선 '주몽 69회 다시보기'를 찾는 네티즌이 몰리며 인기검색어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1시간여 연설에서 '노무현식 유머'가 구사된 횟수는 10여 회. 이 가운데 관중이 반응을 보인 것은 약 절반 가량, 폭소가 쏟아진 경우는 세 번 정도 됐다. 이 날의 관중 구성으로 볼 때 호응이 그다지 컸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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