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남북 관계 복원 조치 남에 촉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북한이 남북 관계의 복원을 위해 남한 당국이 필요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21일 북한관영 중앙방송에 따르면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하루 전 발표한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은 외세에 추종하고 동족을 반대하고 제재하는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말며 북남 관계를 하루빨리 회복하고 화해와 협력, 통일의 길로 나가기 위한 응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남조선의 정당.단체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은 보수세력의 정권 강탈 책동에 각성을 높이고 그것을 절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광범한 반(反)보수 대연합을 실현하여 자기 시대를 다 산 친미 반통일 매국 세력의 재집권 음모를 결정적으로 파탄시키고 그들을 역사무대에서 영영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김기남의 담화가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남한 대선 정국에 적극 개입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북한이 대남 전략의 목표로 내세운 '한나라당 집권 저지'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6개월 넘게 끊긴 당국 대화를 재가동해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관계의 파국에 대한 책임 운운하던 북한이 다소 유연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 관계를 복원하고 싶으니 남측이 분위기를 조성해 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김 비서의 담화는 대북 쌀.비료 지원 확보라는 실리적 측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담화엔 지원을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표현이 담겼다. 북한은 핵실험 강행으로 지난해 예상됐던 50만t의 쌀 지원 중단을 자초했고, 겨울철 식량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대로 국면이 풀려갈지는 미지수다. 정부 당국자는 "남북 당국 대화 복원은 곧 재개될 6자회담에서의 북핵 문제 진전 등 여러 변수와 맞물린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핵실험으로 북한에 극도의 실망감을 보인 국민 여론이 북한의 대선 개입이나 대북 지원 재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핵은 침략과 전쟁을 위한 범죄의 도구지만 우리(북)의 핵은 조선반도 평화를 지키고 민족의 안전과 운명을 수호하는 애국애족의 장검"이란 김기남의 궤변도 먹혀들기 어렵다. 당국자는 "북측으로부터 회담 재개 제의나 대북 지원 요청 같은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김기남(81)은 누구=기자동맹위원장과 당 선전선동부장을 거친 체제 선전 분야 전문가. 2년 전 8.15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남한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문병했다. 당 역사연구소장을 겸직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