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전략 비공개 보고서 국회 제출 문건 통째로 유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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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공개 협상보고서가 유출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무역구제 분야(반덤핑 제도 개선) 등에서의 협상 쟁점에 대한 우리 측의 분석과 향후 협상 전략을 담고 있다.

이는 13일 한.미 FTA 6차 본협상을 앞두고 열렸던 국회 한.미 FTA 특위(위원장 홍재형)에서 우리 협상단이 협상 대응방안에 대해 비공개로 보고했던 문건이다.

이와 별개로 방송위원회도 한.미 FTA의 방송 개방 협상 전략과 관련한 내부 문건이 외부에 유출됨에 따라 내부조사에 착수했다. 우리의 협상 전략을 담은 비공개 문건이 이처럼 잇따라 유출되면서 미국에 우리 측 협상 카드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 보고서 유출 파문=19일 한 일간지와 인터넷 매체는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한.미 FTA 고위급 협의 결과 및 쟁점 방향'이라는 문건을 토대로 "정부가 국내 금융 정보를 국외 본점에서도 위탁처리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허용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금융 분야 15개 협상 쟁점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안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에 앞서 18일 이 두 매체는 "정부가 무역구제 분야의 요구사항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를 얻기 위한 협상 카드로 쓰기로 했다"며 이 비공개 보고서를 공개했다.

당시 이 문건은 철저한 비공개 원칙에 따라 여야 의원 30여 명으로 구성된 '한.미 FTA 특위' 위원들에게만 배포됐다. 문건과 관련된 정부 관계자나 특위 위원 중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협상단을 흔들기 위해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의혹을 사고 있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국회 FTA 특위 설립 당시 정보를 외부로 노출하지 않기로 위원들이 서약했으며 외부 유출 시에는 정보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 규정까지 뒀다"고 밝혔다.

◆유출 경로 조사=국회 FTA 특위 관계자는 "보도 내용을 분석한 결과 특위에서 배포했던 비공개 문건이 통째로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특위 측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24일 열리는 전체 특위에서 진상조사와 대응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관련, 김종훈 우리 측 수석대표는 이날 브리핑에서 "비공개 문건이 외부에 통째로 유출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비공개 문건) 내용이 유출된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웬디 커틀러 미국 측 대표가 '(관련 보도를) 꼼꼼히 잘 봤다'고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미국 대표단 관계자도 이에 대해 "비공개 문건이 유출된 것은 (미국에선)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송위원회서도 유출=방송위원회도 18일부터 한.미 FTA의 방송 개방과 관련한 내부 문건 유출 경위 조사에 착수했다. 방송위는 이날 내부 문건 유출 의혹을 사고 있는 최민희 방송위 부위원장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사무처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이에 앞서 언론노조는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외교통상부 등이 방송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정부 협상단의 회의 내용을 공개했다. 조창현 방송위원장은 내부 문건 유출 의혹을 제기하며 최민희 부위원장 등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김양하 방송위 공보실장은 "대외 협상 전략 등과 관련한 중요 문건이 만일 외부에 유출됐다면 결국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유사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홍병기.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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