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의식에 저절로 매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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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동양화나 한국화, 서양화라는 장르의 구획을 타파하자는 것이 최근 젊은 세대의 주장이고 적지 않은 기성작가들까지 공감대를 지니고 있어 장르 해체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파상 높게 일고 있다.
『어떤 재료를 사용했든, 어떤 방법을 강구했든 한국사람이 그린 그림은 종내는 한국학이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 논의의 명분이고 보면 지금까지 지나치게 양식의 굴레나 재료개념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도 든다.
현 단계에서 장르의 해체가 바람직한 것인지, 계속 장르의식에 투철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는 속단할 수 없으나 적어도 동양화니 서양화니 하는 양식 이전에 먼저 회화로서 접근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림은 어떤 양식이나 방법 이전에 그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상문당·두손 두 화랑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열고있는 황창배씨의 작품은 어떤 양식이나 방법의 굴레를 가늠하기 전에 순수한 그림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자유분방한 작가의 의식에 보는 이들도 스스럼없이 끌려들게 된다.
황씨의 이 같은 자유로운 의식은 80년대 일련의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되는 민화적 색채와 구성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이지만 90년대의 근작들은 더욱 해학적이고 비평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더욱 풍요로운 회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우선 재료상의 관념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방법적 구사가 근작에 올수록 강해지는 인상이다.
화선지의 바탕에 때때로 수묵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아크릴 물감과 두꺼운 마티에르의 진득한 표현의 질료가 격정적인 운필과 비판적인 내용들을 담고 걸러내기에 안성맞춤이다.
격렬한 제스처와 의미 없는 기호들의 즉흥적 배열은 액션페인팅의 전형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물·식물, 또는 의태적인 형상을 빌린 치기 어린 표현과 해학성은 그림을 행위의 순수한 영역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의식과일상의 자유로운 침투현상으로 보는 소박한 회화관의 반영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물고기나 동물, 또는 사과의 내부를 금속성의 물질들로 투시한 일련의 작품들은 날로 심각해지는 공해와 자연 파괴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의 반영이라고 생각되며, 최근 우리사회의 문제를 조형의 방법을 통해 비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 적절한 인상을 받는다.
그림이란 것이 별세계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진솔한 반영이란 점을 이들 그림은 교훈으로 말해 주고있다.
그러면서도 역시 그림은 그림으로서의 요건, 그림으로서의 존재를 지닌다는 것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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