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당한 아버님 한 풀어 드리려…〃|사할린서 부친유해 모셔온-종로학원 강사 이훈 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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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선을 가자 조선, /하시던 조선은/저승길보다 멀었을까/유지나야 꼬레야에 길이 열렸는데』일제 때 사할린에 징용으로 끌려가 그곳에 묻힌 부친을 찾아간 이훈경씨(64·종로학원강사·서울서교동400)가 현지의 무덤 앞에서 지은 시다.
지난43년 35세의 나이로 사할린에 끌려간 이씨의 부친 병계씨의 유해는 아들의 손에 안겨 48년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이씨는 지난달 22일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비슷한 처지의 방문단 85명과 함께 보름동안 사할린에 머문 뒤 지난 2일 아버지의 유해와 함께 귀국했다.
이씨의 부친은 사할린에서 재혼했으나 지난 71년 63세로 현지에서 사망하고 재혼한 아내도 사망, 현지에는 아내가 재혼당시, 데리고 온 딸·사위만이 남아 의붓아버지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의붓 매제 김부권씨(69)의 초청으로 방문한 이씨는 그의 안내로 고르샤코브 시립공동묘지를 찾아가 유해를 화장, 모시고 올 수 있었다.
사할린의 브이코브 탄광에서 일하던 부친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려는 희망을 안고 다른 많은 사할린 징용동포들처럼 이곳 고르샤코브시로 왔고 날마다 항구에 나가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경남고성)을 그리다 끝내 타향에서 숨겼다.
부친과는 해방 후 연락이 두절됐다가 지난 50, 59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경유한 인편에 편지를 전달받은 적이 있으나 그 뒤 다시 연락이 끊겼다가 72년 일본에 있는「사할린 억류 한국인회」박노학 회장(작고)으로부터 부친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씨는 지난해부터「중소 이산가족회」를 통해 아버지의 연고자를 수소문, 의붓 매제와 연락이 됐고 이번에 아버지를 모셔올 수 있게 됐다.
하나뿐인 동생과 모친은 이미 6·25때 사망했고 이씨는 의령중·마산고·경남고 국어교사 등을 거쳐 72년부터 종로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사할린주의 수도가 있는 유즈노 사할린스크, 탄광이 있는 브이코브·고르샤코브 항구 등을 방문하며 많은 징용 1세들의 고국에 대한 바람과 원망을 들을 수 있었다』면서『불만의 주종은 모국방문이 일본이 아닌 한국적십자사의 주도아래 이뤄지도록 해달라는 것과 자신들을 거지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두 가지였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고국방문이 일본적십자사의 보조금이란 명목의 자금지원으로 이뤄지는데 떳떳하게 손해배상을 받아 그 돈으로 한적 주도의 고국방문이 이루어져야지 범죄자들에게서 받는 보조금이라 서야 자존심 있는 정부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따지더라는 것.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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