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부시의 '탈석유 선언'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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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극 빙하도 빠르게 녹고 있다. 어제 뉴욕 타임스는 해빙(解氷)과 함께 얼음 속에 묻혀 있던 섬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지도제작업자들이 바빠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최근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NCAR)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북극 빙하가 2040년이면 모두 녹아 없어진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미국의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이 경고하듯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눈앞의 현실이 됐다.

2007년 국제뉴스의 흐름을 좌우할 키워드는 에너지 안보와 지구온난화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확보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갈등, 온실가스 효과에 따른 지구온난화의 위기, 대체에너지 개발 경쟁 등이 신문의 국제뉴스 면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최근의 뉴스를 봐도 그렇다.

한국인 근로자 피랍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이다. 선진국 석유 메이저들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최근엔 중국까지 가세했다. 러시아와 벨로루시가 갈등을 빚은 것도 석유 때문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21세기 사회주의'를 밀어붙이고, 이란과 함께 20억 달러 규모의 '반미(反美) 지원 펀드'를 조성키로 한 것도 엄청난 오일 달러 수입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가 굴러가려면 하루 7800만 배럴의 석유와 2700억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필요하다. 엑손모빌에 따르면 2020년에는 수요가 지금보다 40% 늘어날 전망이다. '21세기의 제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으로서 에너지 자원의 확보는 국가의 명운이 달린 문제다.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마구 뿌려 가며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중남미를 상대로 자원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화에 따라 개발 열기가 확산하고, 화석연료를 둘러싼 자원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지구촌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신종 바이러스가 잇따라 출현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고,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유발하지 않는 대체에너지원의 개발은 지구촌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다.

며칠 전 동아시아 16개국 정상은 필리핀에서 채택한 '세부선언'을 통해 바이오연료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난주 유럽연합(EU)은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와 바이오연료 사용비율을 각각 20%와 10%로 높인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EU권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20%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전 세계 화석연료의 4분의 1을 소비하고 있는 미국의 선택이다. '탈(脫)석유'를 동반하지 않는 세계화는 파국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언젠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지 말란 보장이 없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3일 국정연설에서 깜짝 놀랄 대체연료 개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탈퇴한 교토의정서로 복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말도 들린다. 에너지 문제야말로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이라크전 실패의 부담에서 벗어나 모처럼 지구촌의 미래를 위해 부시 대통령이 '탈석유'의 위대한 비전을 제시해 주길 기대해 본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