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로 제2인생…배구스타 박미희|코트에 뿌린 열정 이젠 가정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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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제 배구공을 손에서 놓은지도 벌써 두 달이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신혼주부로서, 학생(한양대체육과3년·28세)으로서 마냥 바쁘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소속팀(대농)과 배구협회는 현역으로 다시 뛰어달라는 요청을 해와 갈등에 빠뜨리고있다.
사실 나는 올 시즌 들어 젊음을 불사른 배구코트를 미련 없이 마감하고 주부학생으로「제2의 인생」에 몰두하려했다.
그런데 협회와 소속팀이 또 부르니 정녕 행복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나에 대한 이와 같은 배려와 좋은 평가에 대해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진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얘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어왔다.
후배에게 길을 터 주기 위해서라도 현재 주어진 나의 길을 가야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은퇴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11월 결혼을 앞두고서다.
이젠 선수로서 절정기를 지나 더 계속하면 팀에 누를 끼칠 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 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단의 (이창호)감독님과의 그 동안 정분을 뿌리치지 못하고 지난겨울 대통령배 대회 때 다시 코트에 복귀했다.
누구는 체력이 있는데도 은퇴하려는 나에 대해 꿈같은 신접살림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진퇴를 분명히 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요즘은 결혼하면 으레 생기는 신체적인 변화까지 있어 코트에 당분간 나설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감독님에게 안부전화도 드리고 운임언니와도 일상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체육관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만 학생주부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고민도 생긴다.
신혼주부로서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나 나보다 어린 학생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여간 애를 먹는 것이 아니다.
F학점이 두 과목이나 있어 남편보기도 민망할 정도다.
막상 코트를 떠나려니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쉬움과 섭섭함을 쉽사리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올림픽에 두번(LA·서울)씩이나 출전했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코트에 선 지난겨울 대통령배대회 때 소속팀에 좋은 성적을 안겨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고교때부터 선수생활 11년, 실업생활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넘는 선수생활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후배들에겐 인생의 황금기인 젊음을 몽땅 불태우는 코트에서 결코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코트에서의 일시적인 인기는 환영에 불과한 것이지만 선수에게는 둘도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된다.
앞으로도 코트 뒤에서 후배를 격려하며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제2의 배구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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