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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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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 조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였다. 조용필 같은 이들을 국민가수라고 불렀다. 당시 대중문화의 주축이 급격하게 10대로 옮겨진 것에 대한 심리적 반동의 의미가 컸다. 이어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찬사처럼 붙이는 게 유행이 됐고, 급기야 국민여동생까지 등장했다. 연기도, 공부도 잘한 배우 문근영이었다. 날로 이해불가의 존재가 돼 가는 현실 속 10대와 달리, 기성세대가 갈망하는 순결한 10대 이미지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요즘엔 김연아.박태환 같은 10대 스포츠스타들이 그 자리를 잇는다. 국제대회 우승으로 국가적 자긍심을 떨친 것을 격려하는 의미다.

관객 1000만 명 영화가 국민영화로 불리는 것은 어떠한가. 온 국민이 함께 즐긴 영화라는 뜻 외에, 할리우드 못잖은 성취를 이룬 장한 민족영화라는 뉘앙스가 더해진다.

최근 한창 재발견 중인 비보이들은 이미 '국민 춤꾼'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위험천만한 춤에 미친 길거리 반항아들에서 하루아침에 자랑스러운 문화역군으로 대접이 달라졌다. 역시 세계대회를 제패한 것이 계기다.

사실 문화의 영역에 관(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민'이라는 수사를 즐겨 붙이는 것은 그렇게 문화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문화 저변에 깔린 집단주의.국가주의적 색채를 드러낸, 한국적 문화현상이다. 국익과 애국의 견지에서 문화를 보고, 취향에서도 개인보다 전체를 앞세우는 것이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국민배우보다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분방함이 국민이라는 단어의 엄격함에 짓눌림을 토로한 말이다. 배우에게 최고의 수사는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이지 모범인간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여동생 문근영은 최근 성인 이미지 도전을 놓고 가십성 성인식을 요란하게 치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입버릇처럼 '국민'이라는 찬사를 남발하는 우리 사회가 유독 그 호칭을 아끼는 영역이 있다. 바로 정치다. 우리는 한 번도 국민대통령, 국민의원, 국민정치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 모두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이들인 데도 말이다. 대중의 사랑과 존경은 물론이고 국익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국 정치가 한국 대중문화만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