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수습의 가닥 잡으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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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재봉 총리의 사퇴문제가 드디어 여야간의 쟁점수준을 넘어 청와대와 민자당간에 묘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민자당 3계파는 강도면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노총리의 퇴진이 국면전환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 같다. 반면 청와대는 노태우 대통령이 이미 지금은 퇴진시킬때가 아니라고 말한 바 있고 더욱이 야당이나 재야의 요구에 떼밀려 가는 것은 금후의 통치권 행사에 타격을 받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지 않나 싶다.
우리는 이같은 사태전개에 기이하다는 느낌과 함께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다. 우선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이 여당안에서 공개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게 보면 정치권 민주화의 한 징표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전후사정을 관찰할 때 대통령과 집권당이 대응책을 놓고 가닥을 못잡는 것은 6공정부의 위기관리능력 수준을 다시금 절감하게 한다. 아울러 제발 이번의 시행착오가 더이상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권기류를 종합하건대 청와대나 민자당 모두 이제는 초기에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지 못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다.
민주화의 방임행태가 갑자기 공권력을 앞세운 강경노선으로 선회한 일,대권을 둘러싼 권력다툼의 추태들,물가폭등,민생불안 등에 대한 다수국민의 불만이 어느 정도 쌓여 있는지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15일 민자당당무회의에서 나온 3계파 공동의 지적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노총리 퇴진을 대통령에 건의하자는 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래의 일사분란한 정부·여당의 모습과 다르다고 그것이 집권세력의 분열상이라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설사 이런 과정이 노대통령을 현 난국으로부터 구출할 「고뇌에 찬 결단」으로 유도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시국수습에 도움이 된다면 그런대로 평가해 줄 소지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청와대의 반응은 꼭 민자당이 전하는 밑바닥 여론에 화답하는 쪽은 아닌 것 같다. 속으로는 노총리 퇴진의 시기와 후속조치의내용을 검토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겉으로 드러난 청와대당국자의 반응은 『체제전복세력으로부터 시국이 안정되지 않는한 대통령의 노내각퇴진 불가방침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청와대의 진심이 그렇다면 정부·여당간의 이견은 오히려 정국의 조기수습을 바라는 국민을 실망시킬 우려가 있다. 우리는 이 단계에서 청와대가 탄력성을 잃고 있는 것인지 민자당이 정권담당 세력으로서 생각이 얕은 것인지 단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분명히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현재 내각개편주장에 농축되어 있는 의미는 노총리 개인에게 시국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기 보다는 현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씻는 국면전환에의 여망이라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이 약이라는 태도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정부·여당은 혼선을 최대한 빨리 정리해서 난국대응에 단합된 의지를 보이는 책무를 더이상 미뤄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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