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에 돈준 사람 각서 받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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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7면에서 계속>
봉사단에서 주관한 새마음갖기운동이란 것도 그래요. 충효사상을 고취시키는 행사를 한답시고 나이 지긋한 교장선생님들이나 동네어른들을 모아다 미리 박수치는 연습을 시키고 학생들을 동원해 거리청소까지 시키니 여론이 좋을 리가 있나요. 충효사상 같은 것은 유교단체나 노인 회에서 해야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지, 미혼의 대통령 딸이「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면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가뜩이나 유신에 대한 저항감이 고개를 들던 때인데 그 말은 정권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있듯 없는 듯 조용하게 봉사활동을 했던 육 여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봉사단 창설 식이니 지부 단합대회니 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거죠.
안되겠다 싶어 박대통령께 보고 드리겠다고 마음먹었죠. 준비는 나름대로 철저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민정비서실이란 데가 어떤 곳입니까. 대통령 친인척문제를 다루는데 만의 하나 잘못된 보고라도 하면 큰 일이잖아요.
그래서 최씨에게 돈을 주었다는 사람에게 각서까지 받았어요. 지방행사를 한다고 하면 관계자들에게 돈이 얼마 들었다는 진술서도 받아놓았어요. 조사해보면 사치성 행사도 적지 않았죠.
이권로비도 포착됐죠. 한 예로 봉사단에서 수익사업을 위해 서울 종암동 어물시장의 운영권을 챙기려 서울시에 로비 한다는 거였죠. 서울시 측에「만일 허가해주면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해 미리 막아버렸어요』

<자네가 얘기 좀…>
박 수석의 보고서를 받아 쥔 박 대통령은 무척 고심했다고 한다. 이미 그전에도 몇 차례 구두보고를 받긴 했지만 막상 문제점이 조목조목 나열된 서면보고를 접하자 화가 치솟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그러면서도 박대통령은 차마 이를 딸에게 직접 이야기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누님아들이 말썽을 일으키자 구속까지 시킬 만큼 모질었던 박대통령도 딸 문제만큼은 선뜻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박씨의 계속되는 증언.
『박대통령으로서도 난감한 일이었을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최씨를 호통쳐 손떼게 하고 싶었겠지만 그게 다름 아닌 딸의 일이라….
전에도 근혜양은「주위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최 목사님을 헐뜯고 있는 것」이라며 최씨를 옹호한 적이 있었거든요. 구국여성봉사단이 문제야 있지만 그래도 근혜양이 육 여사 역할을 해보려 애쓰는 건데 매정하게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보고서를 드렸더니 박대통령은 퍽 고민하는 눈치였어요. 글자하나 빠뜨리지 않고 뚫어져 라 읽어보시더니 슬그머니 나한테 도로 주면서 이러시는 거예요.「자네가 직접 근혜한테 이야기 좀 해봐. 나한테 보고 안한 걸로 하고…」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근혜양을 만났어요. 보고드릴 게 있다고 면회신청을 해 이야길 했지요. 근혜양은「그게 사실이냐, 보고서를 보자」고 하더군요. 근혜양은 나중에 박대통령에게 나름대로 해명을 했던 걸로 알아요.
그후로 나하고 근혜양이 서먹서먹해지자 이를 눈치챈 박대통령이 하루는 나를 불렀어요. 「앞으로 자네가 더 이상 근혜에게 이야기하지 말게. 내가 괜히 자네하고 근혜 사이만 나쁘게 해 놓은 것 같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퍽 이나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는데 박대통령의 가슴이 얼마나 갑갑할까 싶어 목이 메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며칠 지나 박대통령은 일부러 나를 가족식사에 초대해 근혜양과 화해시키려고 애쓰기도 하셨죠』

<"비리 증거 없다">
아직까지도 논란거리가 되고있는 최씨와 구국여성 봉사단문제에 대해 박근혜씨는 자기 나름의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혜씨는 본지「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두 차례의 증언을 통해『최씨와 봉사단에 대한 비난은 모두 근거 없는 것』이라며『당시 청와대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나 우리의 사회운동에 박수를 보냈던 이들이 지금 나와 나를 도와주었던 이들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서글픔을 느낀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근혜씨의 주장.
『논어에 이르기를 이렇다고 했다지요.「백 사람이 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한번 살펴볼 것이며 백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또 한번 살펴 보라」고요.
지금 최씨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16년 동안이나 같이 일했던 제가 아니겠습니까. 혹자는 그런 말도 하더군요. 내가 청와대라는 온실 속에서만 자라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요. 글쎄요…. 저는 누구보다도 엄청나고 중요한 인생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나름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눈도 있어요.
보세요. 정말로 최씨가 무슨 비리를 저질렀었다면 10·26이 12년이나 지난 지금 숨겨질 수 있나요. 5공이 끝나자마자 5공 비리도 다 파헤쳐지지 않았습니까. 최씨가 부정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증거를 대는 사람들은 없어요. 최씨나 봉사단이 실정법을 위반했다면 벌써 법적 처벌을 받았을 것 아닙니까.』
근혜씨는 최씨를 처음 알게된 경위도 소개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얼마 되지 않아 최 목사께서 청와대로 편지를 보내 왔지요. 별로 길지 않았으며 나를 위로하고 대통령 딸로서 용기를 잃지 말라는 내용이었죠. 어떤 사람들은 편지에「꿈에서 육 여사님이 나타나시어 근혜양을 돌봐주라고 하셨다」는 구절도 있었다고들 하는데 그런 것은 없었어요. 나는 원래 꿈이니, 점이니 하는 것을 믿지도 않고요.
어머니가 계실 때부터 편지를 보낸 사람 중 괜찮겠다 싶으면 청와대로 오라고 해 만나는 게 관례예요. 그래서 저도 그분을 만났죠. 만나보니 성실하고 우리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느꼈죠.
그후 접촉이 없다가 최 목사 그분이 아는 의사들하고 야간무료병원을 만들어 보겠다고 해 아버님과 제가 도와주었지요. 불쌍한 사람을 무료 진료한다는 취지가 좋아 아버님이 자금을 지원해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그분과 같이 일하게 됐고 구국선교 단·구국여성 봉사단활동을 하게된 거예요.』근혜씨는『구국여성 봉사단이나 새 마음 운동에 대한 일부의 고까운 시선도 무척 섭섭한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해명했다(이 부분은 다음 회에서 다루어질 예정이다).<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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