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단편 릴레이 편지] 둥근 것이 그리움을 만듭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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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 공부 때문에 공납금을 못 내고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사립 밖에서 울던 누이의 눈물.

오일장 해남 저자에서 신기해서 신기해서 바라보던 자전거 바퀴의 은륜에 감기는 햇살. 둥근 것이 그리움을 만듭니다.

다 떨어진 빈 나뭇가지 삶이라도 겨울의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고 있는 굴참나무 이파리들, 곧 바람에 날려갈 것만 같은 새 집들, 그 새들이 잘자르 딱데굴 쎄롱쎄롱 ㅆㅆㅆ 지저귀는 귀엽고 동그란 소리들. 둥근 것이 그리움의 집입니다.

츠츠츠 파라라락 물수제비 뜨며 날아가는 납작돌, 꽃과 잎 다주고도 차마 가지 못하고 서걱이는 연(蓮)대들, 산모롱이 휘어 돌아간 호젓한 오솔길, 휘어져 금세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추녀 그 며느리 서까래 끝 쉴새없이 몸을 부딪는 물고기의 종소리 배흘림 기둥 암기와 수키와 …둥근 것이 그리움의 영토입니다. 저 둥글고 따사한 것들이 나를 키워온 것들입니다.

글=이지엽(시인), 전각=정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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