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원유 통과 관세 달라" 벨로루시, 유럽행 송유관 차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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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러시아와 옛 소련 소속국 벨로루시 간 에너지 분쟁의 불똥이 유럽으로 튀었다. 벨로루시는 러시아가 자국 송유관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석유에 대한 관세 지급을 거부하자 유럽행 송유관을 틀어막았다. 앞서 벨로루시는 러시아가 자국에 공급하는 가스가격을 두 배 이상 인상한 데 대한 보복으로 지금까지 받지 않던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통과 관세를 징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러-벨로루시 간 에너지 갈등이 유럽의 에너지 대란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유럽행 석유 공급 중단=벨로루시 송유관을 통해 폴란드.독일.우크라이나 등으로 수출되던 러시아산 석유의 공급이 중단됐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8일 보도했다. 폴란드 송유관 업체 페른((PERN) 대변인은 "현재 벨로루시 송유관을 통해 공급되는 석유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폴란드 경제부 차관 표트르 나임스키는 자국 TV와의 회견에서 "이번 사태는 석유 관세 문제를 둘러싼 러시아와 벨로루시 간 갈등과 연관된 것이 분명하다"며 "공급 중단이 일시적 문제이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폴란드는 80일간의 원유를 비축하고 있어 당장 영향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도 러시아산 석유 공급이 중단됐다고 발표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전했다. 독일 정부는 그러나 "자국 정유회사들이 충분한 양의 원유 비축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에너지 담당관은 이날 "벨로루시를 통과하는 유럽으로의 러시아 원유 공급 중단과 관련, 오는 주말 전문가 그룹 비상 회의를 개최해 이번 사태가 미칠 파장을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럽국가들은 러-벨로루시 간 갈등이 지속돼 러시아산 석유 공급 중단 사태가 장기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벨로루시 송유관 회사 관계자는 "폴란드와 독일로의 원유 공급이 감소됐을 뿐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벨로루시 외무부 대변인은 "벨로루시 영토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송유관의 출압력이 낮아진 것은 벨로루시 측의 책임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러-벨로루시 에너지 분쟁=벨로루시는 4일 자국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는 러시아산 석유에 대해 이달부터 t당 45달러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벨로루시 송유관을 이용해 독일.폴란드.체코 등에 연간 약 1억t의 석유를 공급해 왔지만 별도의 관세를 지급하지 않았다. 벨로루시가 갑자기 관세를 받겠다고 나선 것은 러시아가 자국에 공급하는 가스가격을 올해부터 1000㎥당 47달러에서 100달러로 크게 인상한 데 대한 보복 차원이었다.

벨로루시는 러시아가 관세 지급 거부 의사를 밝히고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서자 유럽행 송유관 차단이란 강수를 둔 것이다. 앞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로루시 대통령은 7일 "석유나 가스에 대한 대가로 국가의 주권과 독립을 팔 수는 없다"며 "우리는 어떤 공격과 압력도 견뎌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벨로루시는 최근까지 옛 소련 소속국 가운데 러시아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남아 있었다. 친서방 노선을 선언하고 EU.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그루지야.우크라이나 등과는 달리 러시아와의 국가 통합을 추진해 왔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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