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만든 국회가 탈법 앞장서다니/정순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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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일 오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다룬 국회 내무위에서는 국회로서는 참으로 듣기 거북한 뼈아픈 지적이 튀어나와 일순간 의원들을 당황케하며 회의장을 묘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했다.
선관위원장의 국회출석문제를 둘러싸고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던 윤관 선관위원장이 대뜸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국회가 다른 헌법기관에 대해 독선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이말은 대법관이자 헌법기관장인 그의 평소 대국회관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또한 자신들 멋대로 편의주의운영을 일삼아온 국회의 관행을 꼬집는 경고로서 함축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윤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지금까지 선관위원장이 국회만 열리면 일반 국무위원들과 마찬가지로 으레 국회에 출석하는 관행은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규정에 어긋난다』고 지적,『앞으로는 국회의 의결이 없으면 출석하지 않겠다』고 그의 소신을 밝혔다.
그러자 국회의원들은 목소리를 높여 『그같은 태도는 국회를 경시하고 선관위원장이 국민과의 대화를 기피하며 부정선거를 은폐하려는 기도』라고 몰아붙이며 윤위원장에게 「관례존중」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법상 위법인줄은 뻔히 알지만 국회관례를 따라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국회경시」를 내세워 사실상 「국회독존」을 강요한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문은 의원들 스스로가 이율배반적인 자가당착의 모순속에 빠져있음을 입증해 보이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바로 전날까지 강경대군 치사사건을 다루며 전경들의 시위진압 동원을 불법이라고 지적,그렇게도 철저한 「준법」을 정부측에 요구했던 의원들 스스로가 관례를 내세워 이번에는 「탈법」을 강요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법은 지켜져야 한다. 특히 법을 만드는 의원들 스스로는 국민 누구보다도 법준수에 철저해야 한다.
의원들 스스로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준법」도 요구했다 「탈법」도 강요하는 작태는 분명 국민의 대표임을 빙자한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는 윤위원장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국회운영에 또다른 「독선」을 범하고 있지않은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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