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21세기를 보라/김경동(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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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풋풋한 신록이 그 싱그러움을 한껏 자랑하는 5월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 왔다. 어린이 날,어버이 날,스승의 날에다 성년의 날까지 해서 가정과 청소년을 기리는 아름다운 날들을 담뿍 실은 5월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 한 구석은,그러나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를 품는다. 시위에 참여했던 젊은 학생이 진압업무를 수행하던 같은 또래의 젊은 전경들에게 매를 맞고 숨지는 참사가 우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에앞서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를 구타하는 창피스러운 사건들이 수치스러운 얼룩을 남겼다. 그 밖에도 숱한 사회면 기사들이 묘사한 가정과 청소년들의 병든 모습이 역사에 응달을 만들었던 악몽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깊은 불신과 불만 쌓여
해마다 4,5월이면 정례적인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노동 현장에서는 임금투쟁이 벌어지고,대학에서는 시위가 줄을 잇는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시끄럽고 고통스러운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을 향해 나아가고자 안간힘쓰는 역사를 살아온지도 어언 한 세대를 넘기고 있다.
이 어처구니 없는 갈등의 수렁에서 언제나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실로 안타까운 심경으로 그 밑바닥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세대간의 갈등이라는 핵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요즘 국민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쌍둥이끼리도 세대차 느낀다」라는 농담이 유행한다지만,젊은이와 어린세대에 대한 어른들의 불만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고,공자당시의 중국이나 소크라테스 당시의 아테네에서도 흔히 있었던 것인데,현대에 오면서 사회가 변하는 속도와 폭이 워낙 빠르고 크다 보니 세대간의 차이와 거리는 더욱 심각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세대간 갈등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뿌리깊은 불신과 기성세대의 젊은 세대에 대한 야속한 불만이 깔려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청소년 세대는 버르장머리 없고 방만하며 일보다 놀기를 좋아하고 과격하고 건방지며 하여간 못마땅한게 너무 많은데다,무엇보다도 서운한 것은 기성세대의 뼈아픈 과거와 그간의 공은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젊기 때문에 이상주의에 부풀어 있고,불의에 민감하며,새로운 것에 약하고,권위에 도전하고 싶으며,참을성이 적고,덤벙대느라 칠칠치가 못하며,어른도 아이도 아니라는 정체감의 혼란에 당혹해 하고,책임이 없으니 행동이 앞서는 어정쩡한 세대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된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는 셈이다.
○아픔을 살아온 어른들
한편 젊은세대가 보기에 기성세대는 원칙도 없고 돈밖에 모르며 부패하고 비굴해 믿을 수 없고,그러므로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며,정당하지 못하기에 좇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터에 무엇이 잘났다고 알량한 공치사나 하며 온갖 비리와 횡포를 일삼으면서도,자기들의 삶이 고달팠다는 사실에만 집착해 잘살게 해주니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고함만 지르고,따라오기 싫으면 그만둬라,냅다 밀어붙이든가,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고 가두고 짓밟기 일쑤니,한마디로 보기싫다 물러가라,없어져라,때묻지 않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식이다.
그래도 기성세대가 누구인가. 식민지 살이를 거치며 비굴하고 욕된 삶에 상처입은 정신의 역사를 짊어진 세대,여린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민족의 분단과 서로가 총부리를 겨누고 죽음을 나눈 동족상잔의 아픔을 간직한 세대,전후의 헐벗고 굶주린 육체를 가누려 원조물자에 매달려 자조의 세월속에 자라온 세대,그러다 「가난을 벗어보자. 잘살아보세」하며 기를쓰고 앞만 보며 치달아온 세대,역사의 어느 한순간인들 정상적인 환경속에서 자신을 가다듬으며 살아온 적이 있었던가.
그나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느라 땀흘리면서 수천년을 응어리져온 한풀이에 실성하다 보니,이제야 눈에 섰던 핏발도 좀 가시고,무언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세대. 이것이 우리들 기성세대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젊은 순수 앞에 부끄러운 상흔을 간직하긴 했으나,그래도 우리의 처지를 여기까지 끌어 올린 공이야 너무 인색하게 부정할 필요는 없다.
○서로 감싸는 노력 필요
결국 세대간에 서로를 옳게 이해하고 감싸주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탓에 생겨난 갈등이다. 그러니 매듭은 다 함께 푸는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는 그 얄팍한 기득권에 집착하지 말고 넓은 가슴으로 젊은 의기를 받아들이는 포용과 부드러움으로 접근하고,젊은이들은 못마땅한 기성세대를 나무라며 욕하다 자신들도 닮아가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맹목적인 손가락질일랑 거두고 앞날을 어떻게 하면 어른들보다 낫게 꾸밀까를 궁리하는데 온갖 정력과 젊음을 쏟는게 정도다. 어차피 21세기는 젊은이들의 세기다. 이 때에 우리민족이 세계사에 우뚝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느냐,못내느냐를 판가름할 자신들의 어른된 모습에 더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일 것이다.<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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