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선거비 보전금까지 압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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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일 뻔한 돈을 받아라-."

신용보증기금(코딧)은 지난해 3월 코스닥 등록업체인 A사를 제3자에게 인수합병(M&A)되도록 직접 다리를 놨다. 4년 전 A사가 코딧의 보증으로 대출받은 뒤 갚지 않아 코딧이 대신 물어준 29억여원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코딧 채권관리부는 우회상장을 원하는 기업들과 접촉해 A사를 M&A시킨 뒤 하마터면 떼일 뻔했던 돈을 전액 되찾았다. 코딧의 필사적인 채권 회수 노력이 화제다. 코딧은 중소기업이 은행 등에서 사업자금을 빌려쓸 수 있도록 보증을 서주는 기관. 기업이 부도를 내거나 사업이 부진해 대출금을 못 갚으면 코딧이 대신 갚아야 한다.

이때 코딧은 물어준 돈을 기업에서 받을 수 있는 권리인 '구상채권'을 지닌다. 그러나 말 그대로 신용보증이어서 부동산 같은 담보는 거의 없다. 읍소와 설득, 집요한 재산 추적에 기대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도 지난해 코딧의 구상채권 회수 금액은 6433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한 결과다.

◆선거 당선자도 못 빠져나간다=올해 코딧의 히트 작품은 지방선거 출마자가 받는 선거비용 보전금에 압류를 건 것이다. 코딧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후 당선자나 득표율 10% 이상인 후보자의 선거비용을 보전해 준다는 점에 착안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명단을 뒤진 결과 채무자 2명이 당선되고 1명은 10% 이상 득표한 것을 확인했다.

코딧은 곧 선거구 선관위를 제3채무자로 삼아 채권압류추심신청을 냈고 두 달 만에 4500여만원을 회수했다. 당선자 2명의 의정활동비도 그냥 두지 않았다. 압류를 걸어 약 500만원을 받아냈고 임기 만기까지 5400만원을 더 회수할 예정이다.

◆사기 파산을 막아라=지난해 9월 말 코딧은 B사 대표 K씨가 서울중앙지법에 낸 면책신청에 이의신청을 냈다. B사의 보증금액은 갚지 않은 채 K씨가 유사한 업종의 다른 회사인 C사를 운영 중인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처음엔 "C사는 관계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던 K씨는 코딧이 법원에 면책 이의신청을 제기하자 손을 들었고 7800여만원을 갚았다. 이 같은 사기 파산.면책은 최근 코딧의 골칫거리가 됐다. 법원의 파산.면책 결정을 받으면 코딧에 돈을 갚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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