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 세금 누락 파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 대법원장은 3일 "세무사 사무원의 단순 실수로 인한 것으로 유감"이라고 말했다.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은 "단순 누락일 뿐 결코 대법원장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고의로 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인해 대법원장 직을 그만 두는 일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김 비서실장은 덧붙였다.

①3일 대법원이 언론에 공개한 해명자료.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 시절 맡았던 사건과 수임 금액이 나와 있다. 굵게 표시된 부분은 2004년 6월 받은 성공보수금 5000만원. 당시 이 돈은 국세청에 신고되지 않았다. ②본지가 이 대법원장과 인터뷰를 보도했던 지난해 11월 19일자 1면. 이 대법원장은 당시‘10원이라도 (탈세)했다면 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③탈세 의혹이 제기된 3일 세금 2000만원과 가산세 700여만원 등 2700여만원을 세무서에 납부한 영수증.

◆"세무사 사무원의 기록 누락"=대법원에 따르면 이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진로사건과 관련해 세나 인베스트먼트(골드먼삭스 계열사)로부터 2003년 4월~2005년 6월까지 1.2.3심 및 가처분 사건 등 네 건을 맡아 선임료와 성공보수금으로 8회에 걸쳐 모두 2억5000만원을 받았다.

당시 이 대법원장은 박모 세무사를 통해 세금신고를 하고 있었다. 2004년 7월 그해 상반기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기 위해 수임 사건 60건에 대한 '수입 금액 명세서'를 작성해 박 세무사 사무실에 넘겼다고 한다.

이후 세무사 사무실에서는 이 명세서를 바탕으로 세무서에 제출할 서류를 다시 작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무실 직원의 실수로 2004년 6월 7일 받은 성공보수금 5000만원이 빠진 채 기록됐다는 것이다. 박 세무사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종합소득세를 신고했고, 그 결과 누락이 발생했다는 것이 대법원의 해명이다.

이 대법원장의 세금 탈루 의혹은 지난해 11월부터 제기돼 왔다. 당시 대법원은 세나 인베스트먼트에서 받은 2억5000만원의 수임료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이 수임료에 대한 세금 납부 내역을 살펴보지 않다 3일 오전 '이 대법원장이 5000만원의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한 언론사의 확인 요청을 받고 누락 사실을 실토 했다. 2700여만원의 세금도 세무서에 이날 납부했다.

◆도덕성에 타격 불가피=이 대법원장은 현직 법관들의 청렴성을 주문하며 사법 개혁을 강조해 오던 터라 도덕성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8월 법조 비리 대국민 사과에서 "법관이 도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법률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법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8일 열린 전국법원장 회의에서도 "청렴하지 못한 법관은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없고, 결국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타협하고 만다"고 강조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변호사들은 매출 신고 시 수임사건 목록과 사건번호를 모두 세무 당국에 제출하는데 한 건만 빠졌다는 대법원 측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30대 소장 변호사는 "회계 담당자가 따로 있어 대법원장이 직접 몰랐을 수 있다"며 "그렇다고 5000만원이나 되는 큰 액수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침통한 법원=법원 내 분위기는 침통했다.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의 도덕성이 정면으로 타격을 받은 데 대한 참담한 심정을 표시하는 판사가 많았다. 최근 사법부가 주도하고 있는 사법 개혁 움직임이 위축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일반 국민을 납득시키려면 대법원 차원의 자세한 해명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중앙지법의 모 부장판사는 "세무사 사무실의 단순 실수였다면 크게 문제 삼아선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아무래도 법원의 위상이 추락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중앙지법의 한 평판사는 "수많은 사건을 수임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그런 일이 생겼다면 달리 볼 필요가 있다"며 "과거의 일은 과거로 덮고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무사 해명=당시 이 대법원장의 세무신고를 대행했던 박 세무사는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도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며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건수임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우리 사무원이 실수한 것이다. 100% 내 책임이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이 대법원장의 변호사 시절 세무업무를 대행했다.

민동기.백일현 기자

◆진로 법정관리 사건=진로는 유동성 위기를 느끼던 1997년 9월 법원에 화의신청을 했다. 당시 진로의 외자 유치 컨설팅을 맡았던 골드먼삭스는 진로 채권 일부를 인수한 뒤 2003년 4월 진로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장진호 진로회장 측은 법정관리 무효를 주장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진로는 2005년 6월 하이트맥주에 매각됐다.

◆골드먼삭스=1869년 독일계 유대인 마커스 골드먼이 뉴욕에 설립한 세계적 투자은행 겸 증권회사. 기업의 인수합병과 채권발행이 주요 사업 분야다. 1992년 한국에 진출한 뒤 국민은행과 진로 채권을 싸게 인수한 뒤 비싸게 팔아 막대한 차익을 실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