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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기록·도서관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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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국의 개방.개혁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문화혁명으로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던 마오쩌둥(毛澤東)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는 마오의 사망 이후 "마오는 공적이 잘못보다 많다"(1981년, '건국 이래 역사적 문제에 관한 당의 결의')고 규정했다. "마오는 문화혁명에서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지만 전 생애를 통틀어 보면 공적이 제1이고, 과오는 제2다"라고 평가했다.

마오가 주도한 문혁의 집단 광기(狂氣)가 중국 대륙을 엄습했을 때 덩은 멸시와 박해 속에 권좌에서 쫓겨났다. 그의 처와 어머니는 귀양살이를 했으며 맏아들은 홍위병한테서 도망치다 전신마비가 됐다. 동생은 고통 속에 자살했다.

최고 권좌에 복귀한 덩은 마오에게 정치적 한풀이를 하지 않았다.

마오의 치명적 실패를 파헤치기보다 공적을 기린 이유는 뭘까.

극좌 이념의 과잉, 계층.연령 간 증오와 분열, 국정 대혼란, 경제 파탄은 10년 문혁이 중국에 남긴 처절한 상처였다. 덩은 10억의 중국을 끌고 가기 위한 통치술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는 문혁의 상처를 씻고 중국을 도약시키기 위해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덕분에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은 국민적 에너지를 개혁.개방이란 한 목표에 집중해 오늘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통합의 힘이 국민적 역동과 성장을 가져온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최단기에 이뤄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 거의 유일하다. 그러한 성취는 시대적 도전과 국민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극복해 해결한 덕분이다.

지도자와 국민의 합작품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런 성취를 잊고 국민적 반목과 질시가 깊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자학(自虐)의 역사관이 판친다. '대통령학'의 저자인 최평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이 60년 만에 경이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으면서도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역대 대통령들의 좋은 가치가 후대에 인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과 리더십'의 저자인 김호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통합 에너지는 국민이 역대 대통령의 좋은 점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찾아낸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통합론이다.

"미국이 연방정부나 주정부, 혹은 민간 차원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도서관 겸 박물관(Library and Museum)'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다민족 국가의 국민적 통합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 역사학회장 이주영 건국대 교수.미국사)

성장과 통합의 지도자 덩샤오핑과 미국의 도서관 겸 박물관 사례들은 2007년 한국의 역대 대통령 8명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최.김.이 교수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좋은 점을 찾아보자고 공통적으로 제안했다. 예를 들어 '건국'과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체제 보존'(이승만)→'산업화'와 '자주 국방'(박정희)→'안정 속 흑자 경제'(전두환)→'북방 외교'(노태우)→'군사문화 청산'과 '금융실명제'(김영삼)→'외환위기 극복'과 '남북한 긴장완화'(김대중)를 국민 통합을 위한 공통의 가치관으로 삼자고 말했다.

이들은 또 역대 대통령의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록관 겸 도서관'을 지어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자고 강조했다. 현재 역대 대통령의 기록관 겸 도서관은 국가 예산 60억원이 지원된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밖에 없다.

◆침묵의 박물관=이승만 대통령의 유품은 생전의 거처인 '이화장'의 창고에 처박혀 있거나 연세대에 넘겨져 일반의 접근이 차단돼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기록물 5000여 점도 대외비의 별도 시설에 감춰져 있다. 원래 기념관이 세워지면 전시될 것이었는데 건립이 중단되자 임시조치로 취해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기록물을 사저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회고록을 썼지만 거제도 생가에 일부 자료가 있다고 한다. 한국 역대 대통령의 유품과 기록물 대부분은 '침묵의 박물관'에 방치돼 있다.

대전에 청사가 있는 '국가기록원'의 곽건홍 대통령 기록관리팀장은 "역대 대통령의 기록관이 지어져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공개되면 국가 경쟁력도 높아진다"며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미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기록관 겸 도서관=역대 대통령의 공문서나 개인 기록 등을 보관.정리하는 시설.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이나 대학에 세우고,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 관리하는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Presidential Library & Museum)'과 유사하다. 대통령을 추앙하기 위해 만든 '기념관(Memorial)'과는 다르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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