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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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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새로운 시작이 갖는 의미는 늘 각별하다. 매년 새해를 맞아 하는 다짐은 새로운 시작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설사 연초의 다짐을 다 지키지 못하더라도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고, 성취도 없다.

옛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시작'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플라톤은 "어떤 일이나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며 "잘 시작한 일은 반은 벌써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공화국') 호라티우스 역시 "(일단) 착수한 사람은 이미 일의 반을 끝낸 셈"이라고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이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것을 보면, 어느 사회나 시작이 갖는 중요성에 일찍부터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옛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시작이 갖는 효과를 전체의 50% 이상으로 본 셈이다. 우리나라 프로 바둑에서 흑돌을 잡고 먼저 두는 데서 얻는 이득을 말하는 이른바 '선착(先着)의 효'는 6집반으로 본다. 먼저 시작하는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시작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론은 이른바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다. 작은 눈뭉치가 언덕을 굴러내려가면서 스스로 몸집을 불려나가는 것처럼 처음에 미약하게 시작된 일이 점차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확대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정한 힘으로 전달되는 도미노 효과(Domino effect)에 비해 눈덩이 효과는 가속적으로 증폭된다는 점에서 시작의 중요성이 훨씬 강하다. 물론 눈덩이가 어디로 구르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라진다. 처음에 방향을 잘 잡으면 그 이득이 엄청나지만, 자칫 엉뚱한 쪽으로 구르기 시작하면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시작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이론이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다. 중국 베이징에서 일어난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1961년 기상관측에서 생각해낸 이 원리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을 강조한다. 처음의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년의 첫날은 어제였지만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오늘 시무식을 하고 올해 업무를 시작한다. 눈덩이 효과든 나비 효과든 새해 첫발을 잘 내딛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작은 다짐이라도 새롭게 시작해볼 일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