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토론방] 성폭행당한 어린이 법정에 세워야 하나 - "반대심문권 보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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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가 법정 진술을 거부하자 법원이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의 비디오 녹화 증언과 진술조서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 어린이가 법정에서 증언해야 한다는 주장에 독자들의 80% 이상은 반대 의견을 밝혔다. 피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어린이의 정신적 피해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어쩔 수 없다는 견해는 극소수였다.

김창우 기자

판사가 검찰의 눈치를 안 보고 재판하는 것이 당연하고, 범행을 부인하는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하게 증언한 증인을 법정에서 신문할 권리를 갖고 있다. 성문제는 당사자만이 경험한다. 피고인이 부인하는 경우 대질이 필요하고 피고인에게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상대방을 신문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요청은 다른 사건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끔찍한 기억을 겪은 성폭력 피해 아동에게 법정 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고 어린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으니 수사 결과로 법정 증언을 대신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끔찍한 기억은 통상의 폭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굳이 성폭력이라고 차별화할 필요가 없다. 열살 무렵 여자 아이들의 거짓말에서 17세기 말에 여러 사람을 죽인 마녀재판이 시작되었다는 사례는 어린이는 거짓말을 안 한다는 말이 무책임함을 보여준다.

과거는 그대로 재현할 수 없고 결국 사람의 인식과 기억일 뿐이다. 이것들은 문서 외에도 비디오 녹화물 등의 방법으로 보존될 수 있지만 성격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제작에 판사와 피고인이 관여하지 않았던 이상 비디오 녹화물도 수사기관이 작성한 문서 이상의 가치는 없다. 인권은 특정 부류의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체제들의 형사법 원칙을 따를 이유가 없다.

김창우 기자.김관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