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 음의 연출〃플로르에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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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세계사의 흐름이 하루아침에 변하면서 세계음악계도 보이지 않게 변하고 있다. 그것은 음악적 자존심이 남다른 독일음악계를 통해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통일전 동·서 베를린에는10여개의 수준급 교향악단들이 서로 기량을 겨루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서베를린은 세계정상의 베를린 필을 비롯한 4개, 동베를린은 이번에 내한하는 베를린 심퍼니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한 4개를 각각 자랑삼고 있었다.
이 교향악단들은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각기 다른 체제 속에서 선의의 음악적 자존심 경쟁을 벌여온 것이다.
동구 각 국과 마찬가지로 동독정부는 국민들의 정치적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방송매체나 공연장을 이용해서 수많은 음악회를 여는 등 막강한 문학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정서적 욕구를 채워 주었다. 정치·경제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교향악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동독의 예술에 대한투자가 얼마나 꾸준했던가를 실감케 한다. 특히 중앙일보사 초청으로 내한공연(11∼l2일 오후7시 세종문화회관대강당)을 갖는 베를린 심퍼니야맡로 그 대표적인 예인데,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가위 파격적이라 할 정도의 월등한 대우로 빼어난 연주자들을 확보함으로써 결코 길지 않은 창단(1952년)역사에 비추어 놀랄 만큼 짧은 기간에 일급 교향악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코드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휘자 바치라프 스메타체크, 쿠르트 잔데를링크는 이 교향악단 최대의 공헌자이기도 하다.
베를린 심퍼니의 내한공연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사실은 클라우스 페터 플로르의 등장이 다. 라이프치히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뉴욕 필을 상임지휘 한 거장 쿠르트마주어의 대를 잇는 플로르는 이미 83년부터 서독에 객원지휘자로 초청되면서 국제적 평판을 얻기 시작했다. 탄탄한 음악기초교육, 타고난 재능, 국가적 뒷받침, 여기에 스승인 쿠르트 마주어의 아낌까지 보태져 플로르는 70여개의 직업교향악단들이 활동하던 서독음악계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그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던 것이다. 필자도 그가 서독의 TV콘서트에 자주 등장하던 80년대 중반부터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또 87년 여름 바이로이트 바그너 음악제에서 처음으로 플로르를 직접 만났을 때는 그를 한국음악계에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신선한 자극이 될까하고 생각했는데 당시 상황으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닌지라 몹시 아쉬웠다. 그런데 플로르가 이끄는 베를린 심퍼니를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필자만의 기쁨이 아닐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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