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M&A의 제왕' 사모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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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에 의한 기업인수 사상 최대, 단일 사모펀드 인수 규모 1000억 달러 첫 돌파…."

2006년 세계 기업 인수합병(M&A)의 중심에는 사모펀드가 있었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힘을 얻은 외국 거대 사모펀드들은 '먹잇감'이 있으면 바로 몰려들어 기업을 사들이는 엄청난 '식욕'을 과시했다. 시장조사기관인 톰슨 파이낸셜에 따르면 올해 사모펀드 주도의 M&A는 7000억 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지난해의 두 배, 10년 전인 1996년에 비하면 20배에 달한다.

◆한 사모펀드가 한 해 1000억 달러 M&A=올해 가장 많이 거래한 사모펀드는 미국계 텍사스 퍼시픽 그룹으로 나타났다. 이 펀드는 총 17건, 1010억 달러의 M&A를 기록, 단일 펀드로는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제일은행과 하나로텔레콤을 사들였던 뉴브리지캐피털의 모(母)펀드인 텍사스 퍼시픽은 올 들어 호주 국적항공사인 콴타스 항공, 라스베이거스 카지노그룹 하라스, 미국 최대 스페인어 방송인 유니비전 등을 공동 인수하며 1위를 차지했다.

텍사스 퍼시픽을 포함해 올해 전 세계에서 500억 달러 이상의 거래를 성사시킨 미국 사모펀드는 모두 7개였다. 2위는 미국 전 재무장관 폴 오닐이 있는 블랙스톤 그룹으로 930억 달러짜리 거래를 성사시켰다. 미국 병원체인 HCA(320억 달러)를 공동인수한 KKR(780억 달러)을 비롯, 베인 캐피털(약 747억 달러), 칼라일(729억 달러), 토머스 H 리 파트너스(약 647억 달러), 골드먼삭스(685억 달러) 등 유명 사모펀드들 대부분이 올해 500억 달러를 넘겼다.

◆주요 특징=사모펀드가 기업 M&A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거물급 인사의 참여도 이어졌다. KKR은 세계 최고의 금융인으로 평가받는 HSBC 전 회장 존 본드를 영입했다. 미국 10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서버러스 캐피털은 올해 퇴임한 전 재무장관 존 스노를 끌어들였다. 이 회사에는 이미 댄 퀘일 전 부통령이 국제담당 회장으로 있다. 클린턴 2기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도 헤지펀드인 'D E 쇼'에 영입됐다. 2003년 블랙스톤에 들어간 폴 오닐까지 합치면 미국 전직 재무장관 세 명이 사모펀드에 몸담고 있는 셈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올해 M&A의 특징으로 '클럽 딜'(Club deal)을 꼽았다. 인수 규모가 수백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화하면서 여러 개의 펀드가 뭉쳐 기업을 사들이는 공동 인수 방식이 유행한 것이다.

그동안 주 M&A 대상이 금융.식품.유통 등이었다면 올 들어서는 항공.전기전자.인프라 등으로 영역이 확대된 것도 특징이다. KKR 등이 주도한 필립스 반도체 부분인수와 텍사스 퍼시픽 등이 주도한 콴타스 항공 인수 등은 사모펀드 M&A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아시아 시장도 네 배 성장=사모펀드에 의한 M&A는 미국에서만 4030억 달러로 지난해의 세 배에 달했다. 아시아도 480억 달러로 전년 대비 네 배 증가했다. 하지만 호주.대만과는 달리 한국과 중국에선 실적이 저조했다. FT는 한국과 중국의 경우 국수주의 바람이 불면서 중국에서는 칼라일에 의한 중국 최대 중장비 업체 쉬궁(徐工) 인수가 벽에 부닥쳤으며 한국에서는 론스타에 대한 검찰 수사로 사모펀드 시장에 찬바람이 불었다고 전했다.

FT는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사모펀드들이 내년 아시아 기업 인수에 동원할 수 있는 돈이 1000억 달러에 달한다"며 "내년에 인도시장 등에서 활발한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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