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개 나라와 맺은 FTA 일자리 100만 개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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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자리 100만 개가 생기고, 1인당 국민소득은 3500달러에서 8000달러로 오르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연간 다섯 배로 급증하고,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70%가량 향상됐다."

이달 초 멕시코의 새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아구스틴 카르스텐스(48)는 "미국.캐나다와의 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달라진 멕시코 경제의 위상 변화를 나열하자면 A4 용지 몇 장을 채울 만큼 끝이 없다"고 말한다. 1994년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 미국.캐나다에 시장을 개방한 NAFTA 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NAFTA는 오히려 멕시코 경제를 견실하게 되살렸다는 얘기다.

카르스텐스 재무장관은 NAFTA 협상에 참여했고 10월까지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를 지내다 새 멕시코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취임했다. 본지는 멕시코의 FTA 경험을 듣기 위해 카르스텐스 장관과 단독 e-메일 인터뷰를 했다. 그는 IMF 부총재를 그만두자마자 대통령인수위에서 경제 분야를 담당하다 재무장관으로 취임하느라 바쁜 일정 속에서도 NAFTA 협상에 참가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미 FTA 협상에 필요한 전략을 친절하게 조언했다.

카르스텐스 장관에 따르면 멕시코 경제는 93년 NAFTA가 체결된 이후 12년간 '환골탈태''상전벽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는 "모든 것은 경제지표가 말해준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이 기간 중 ▶누적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40% ▶수출금액 4배 이상 증가 ▶만성적인 무역적자 탈피 ▶외국인 직접투자(FDI) 누적 규모 1750억 달러 등을 보면 NAFTA의 경제적 성과를 한눈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의 무역 종속이나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오해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대미(對美) 수출이 급증하면서 미국 시장의 주요 품목 중 226개 품목에서 멕시코가 최대 공급자로 떠올랐고, 미국으로의 수출품 가운데 공산품 비중이 25%에서 82%까지 높아지는 등 무역의 질은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발전에 힘입어 멕시코는 지난해 세계 8위 무역대국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성장동력의 원천은 NAFTA를 비롯해 멕시코가 3개 대륙에 걸쳐 46개국과 맺고 있는 12개의 FTA 덕이라는 것이 카르스텐스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FTA가 이런 지표만 좋게 한 게 아니라 멕시코 경제의 구조를 통째로 바꿔놓았다고 강조했다. "FTA는 기술.지식.아이디어 등 고도의 경제수단도 활발하게 옮겨줬다. 이를 통해 멕시코는 최신 기술과 경영기법을 수혈했다. 오늘날 멕시코 기업은 역내 시장 경쟁을 위해 미국.캐나다 기업과 같은 수준의 기술과 경영기법을 필요로 하게 됐으며 이게 바로 멕시코 민간 부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런 평가에 대한 반론을 그는 "무지에 따른 오해"라고 지적했다. 그는 먼저 빈부격차를 예로 들며 "빈부격차는 멕시코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가 반복되면서 더 벌어졌지만 NAFTA 때문에 확대됐다는 실증적 분석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득불평등은 정부가 (장밋빛) 기대감만 키워주면서 국민이 능력에 벗어난 소비와 차입을 하게 된 결과"라며 "이는 결국 경제정책의 신뢰성과 경제성장 없이는 부(富)의 창출과 중산층 육성은 물론 분배 역시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농업 부문의 경쟁력과 관련해서도 "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경쟁력이 없어 버티기 어려운 분야였다"며 "미국과의 경쟁이 시작된 이후 정부가 현금을 지원하고 농가가 대안작물 위주로 전환하면서 농작물 생산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카르스텐스 장관은 특히 "무역자유화 자체는 경제성장의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며 "시장 개방을 통해 물리적.사회적 인프라, 민간투자에 대한 규제 철폐, 잘 작동하는 사법 체계, 투명한 조세제도, 인적자원 육성,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 등이 뒷받침돼야 시장 개방의 과실을 따먹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한국이 추진 중인 미국과의 협상에 대해선 협상이 끝날 때까지 신중하되 유연하게 접근할 것과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내 협상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카르스텐스 장관은 "FTA에서 얻기로 한 목표와 원칙만 지키되 개별적인 부분에서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효율적인 협상을 이끌 수 있다"며 "민감한 품목에 대해선 민간의 요구와 애로를 충분히 경청해 협상전략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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