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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용어 '주인들'은 모르는 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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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지만 이런 말에 익숙해지는 것이 신비롭고 권위 있는 '법의 세계'의 일원이 되는 지름길 아닌 첩경(捷徑)임을, 이미 그 세계의 구성원인 교수들이 설명해 줬다. 처음이 힘들지, 알고 나면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재미가 생기는 법이라고 하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재미를 맛보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남달리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하면서 법과는 담을 쌓고 살아도 별문제가 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니 '그들만의 세계'의 언어가 어떻든 별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사실 우리 삶의 기본을 결정하고 관계를 정의하는 틀이 남의 나라 말처럼 뭐가 뭔지 모를 말로 돼 있다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때로는 법에 의해 단번에 신세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에게만 맡겨야 할까.

이런 점에서 볼 때 법제처가 몇 년 전부터 법령문 표기를 한글로 하고 추상적이고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용어 등 외래어, 지나친 축약어를 우리말로 쉽게 풀어쓰고 문장구조도 이해하기 쉽도록 정비하는 사업을 시행해 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올해가 그 결정판인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첫해가 된다. 위원회를 확대 구성하고 정비 기준을 만들어 법률 개정안 63건을 국회에 제출했다. 내년부터 4년 동안 매년 250여 건의 법률을 정비해 2010년까지 현행 법률 1100여 건의 정비를 끝낼 계획이라고 한다. 법은 물 흐르듯 가는 것이다. 말의 진정한 고수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쉽게 한다. 법의 주인이 국민이라 할진대, 주인이 얼굴도 모르는 일꾼을 어떻게 믿고 꼬불거리는 험한 산길을 가겠는가.

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