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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 쇠파이프… 과격해진 민노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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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동계가 과격해졌다. 9일 집회 현장에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동원했다. 정부를 상대로 전면전을 치를 태세다. 민주노총 손낙구 대외협력실장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대책이 없으니 (노동자들이) 격앙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용납하지 않을 태도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 과격 시위는 눈감을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노.정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노동계와 정부는 발을 맞추는 듯한 분위기였다. 노동계의 기대도 그만큼 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게 노동계의 생각이다. "결국 다른 정권과 다를 바 없이 기업의 압력에 못이겨 노동자를 외면하기 시작했다"(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는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盧대통령이 민주노총의 운동방식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심지어 "민주노총의 노동운동 방식이 기업을 해외로 나가게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노동부 관계자가 전했다. 段위원장이 전국노동자대회에서 "盧대통령이 노동자를 배신했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다른 생각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이기주의로 인해 노동자 전체가 피해를 보게 해서는 안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국제기준에 맞춰 노동법을 손질하고 있는 마당에 국제기준을 넘어서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런 와중에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지회장의 자살을 시작으로 잇따라 자살.분신사태가 발생했다. 노동전문가들은 "자살사태로 노동계가 더 이상 밀리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위기를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총파업과 대규모 집회로 목청을 높이게 됐고, 이 과정에서 격앙된 감정이 표출되면서 과격시위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은 "손배.가압류 문제 등에 대해 대책은 내놓지 않고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지난달 말 긴급성명을 통해 손배.가압류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노동계는 "공공부문의 손배소송과 가압류 조치부터 풀라"고 요구했다. "못 믿겠으니 물건을 먼저 보자"는 것이다.

믿음의 틀이 깨진 이런 상황에서 노.정 간의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이번 달과 다음달, 노동계가 참가하는 범국민대회.전국농민대회.전국민중대회 등이 잇따라 열린다. 여기에서도 과격한 시위가 발생한다면 노조의 강성이미지가 다시 부각될 것이다. 이는 대외신인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경제도 그에 따라 요동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걱정하고 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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