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부동산 얘기하지 마라"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

▶(왼쪽부터) 이종현 UPI 기자, 이병종 뉴스위크 기자, 쉬바오캉 런민르바오 국장, 구보타 류리코 산케이 기자.

2006년 한국은 뜨거웠다. 한ㆍ미동맹의 갈등이 연중 이어졌고, 황우석 사태에 북한 핵실험까지…. 서울에 상주하는 외신 특파원들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을 정도라는 말로 상황 설명을 대신한다. 그들은 2006년을 어떻게 뛰었을까?

어렵사리 서울에서 뛰는 외국 언론 특파원 4명을 한자리에 불러 앉혔다. 몇 번이나 대상자를 바꾸고 시간을 재조정했던가? 우리는 사건마다 나무만 바라보며 숨가빠 했지만 세계의 틀 속에서 ‘한반도라는 숲’을 보는 외신기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 먼저 온 3명의 특파원이 서로 안부를 건넨다. 그러다 한 사람이 문득 “OOO 특파원이 얼마 전 본국으로 돌아갔대요. 서울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대장암이라나 봐요. 아마 다시 서울에는 못 올 것 같다는데…”라고 말을 잇는다. “그래요. 아무리 바빠도 건강은 챙겨야지. 올해 같으면야 모두 안 쓰러진 것이 다행이죠.” 다른 사람이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러는 사이 4명의 성원이 이뤄졌다. 다들 마음이 바빠서인지 느긋해 보이지는 않다. 주어진 시간이 빠듯해 바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참가자
^쉬바오캉 국장(런민르바오)
^이병종 기자(뉴스위크)
^구보타 류리코 기자(산케이)
^이종현 기자(UPI)
◇사회: 허의도 - 월간중앙 편집장
◇장소: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

“너무 변화무쌍… 보람도 컸다”
▶사회자=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요? 지금 딱 떠오르는 올해의 감상 하나, 그 짤막한 이야기부터 한번 나열해 보죠.
▶쉬바오캉(徐寶康) 국장= 한국은 뉴스대국이에요. 힘든 한 해였어요. 얼마나 뉴스가 많은지 기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죠. 간단히 말씀드리면 2006년은 한반도 정세 변화의 해라고 정리하고 싶어요. 북핵이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고, 한반도의 비핵화가 완전히 깨지면서 새로운 정세를 맞이했습니다. 그 현장을 뛰었다는 생각, 나쁘지는 않아요.
▶구보타 류리코 기자= 저도 같은 느낌이에요. 역시 핵실험이 가장 큰 이슈였죠. 한반도 안보상황이 지난 50년과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2006년이 한반도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면서 기사를 썼습니다. 한국이 어느 쪽에 설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문제는 내년입니다. 대부분의 현안은 계속되고 거기에 대통령선거가 걸려 있잖아요?
▶이병종 기자= 솔직히 연초에는 바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역시 한국은 예측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이 여실히 증명된 한 해였어요. 7월 미사일 실험 때 변화무쌍했고, 8월은 좀 잠잠하다 가을에는 핵실험 때문에 또 빠르게 움직였어요. 모든 것이 개별적 사안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누적돼 온 정세의 변화들이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역동적 변화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 같은데, 상당히 급변할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이종헌 기자=앞서 미사일ㆍ핵실험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 그 외에도 내년 선거의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는 재ㆍ보궐선거가 있었죠. 경제적으로도 삼성과 현대차, 그리고 론스타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울의 외신기자들은 남북한 두 개의 나라를 동시에 취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지구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의 남북관계를 취재하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동시에 한국의 다이내믹한 정보통신기술(IT)산업을 취재하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술자리에서 아파트 이야기하지 마라”
▶사회자= 경제적 사안을 먼저 얘기해보죠. 아무래도 아파트 가격 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일본의 아파트 가격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의 거품 붕괴, 그로 이어진 일본의 10년 불황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일본이 우리 경제구조와 유사하면서도 앞서갔기 때문에…. 하지만 15년 전의 아파트 거품 붕괴와 장기불황은 따라가지 않고 있거든요.
▶구보타= 가장 어려운 문제 같아요.(웃음) 부동산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쓰지만 부동산이나 집 사는 것에 대한 관습이 다르거든요. 여기는 자주 이사 다니지만 일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한두 번 정도 이사하는 것이 전부예요. 도쿄(東京)와 지방이 떨어져 있어도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데, 여기는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돼 있으니 부동산 사정도 다르죠. 개인적으로는 틀림없이 거품이라는 생각이 들고, 언젠가 터지리라고 봐요. 하지만 그런 기사를 쓰지는 않았죠.
▶사회자= 일본은 거품이 꺼지고 그 상태에서 안정됐습니까, 아니면 조금 올랐습니까?
▶구보타= 지금은 조금 올랐어요. 완전히 떨어졌다 상황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올라가는 곳도 있어요.
▶사회자= 중국은 상하이(上海)를 중심으로 부동산 거품 형성과 붕괴 우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으로 압니다만….
▶쉬바오캉= 부동산이 큰 문제예요. 그런데 우리는 기사를 못 쓰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땅은 나라 것이거든요. 땅값에는 한계가 있어요.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죠. 둘째는 한국의 부동산 정책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왜 자꾸만 올라가고 있는지 원인을 찾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아직 기사를 안 씁니다. 우리는 배울 만한 것만 보도하려고 해요.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은 보도하지 않아요.
▶사회자= 국내 전문가도 잘 모른답니다.(웃음) 상하이에서는 ‘아파트 안 사기’ 시민운동도 벌어지고 있다면서요?
▶쉬바오캉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요.
▶이종헌= 부동산이 사회 이슈화되면 기사화하는 것이 원칙인데 집값이 오른다는 것만 가지고 쓴 적은 없어요. 단지 집값안정대책이 나오면 왜 그것이 나왔는지 쓰죠. 또 금리를 동결했을 때 부동산에 대한 염려가 있다고 보도했어요. 이렇게 부분적으로 기사를 쓰기는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사를 안 쓰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제는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받은 느낌은 집값이 신용카드사태와 비슷한 것 아닌가 생각해요. LG카드 사태 쓸 때 그쪽과 이야기해 보면 ‘사태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는데, 결국 터져 취재하느라 고생했습니다. 결국 집값 붕괴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회자=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길게 유예되고 있는 것이 문제죠.
▶이종헌= 재미있는 현상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야기해 보면 옛날에는 ‘종교ㆍ정치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파트 이야기하지 말라’로 바뀌었어요. 위화감ㆍ박탈감…. 우리가 월급 그대로 10년 모아야 1억 원인데 오늘도 보니 검단지역에 얼마가 올랐다고 하던데….(웃음)
▶이병종= 집값 오를 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오르면 뭐 해? 집 한 채밖에 없는데’….(웃음)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팔아봐야 세금 다 내야 하니 좋을 것이 없다고 하죠.
▶사회자= 그것은 서울ㆍ수도권에서 팔고 살 때 이야기이고, 팔고 지방으로 가면 사정이 다르죠.
▶이종헌= 부동산 관련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정도라고 보는데요. 먼저 정책의 문제, 어떻게 대통령에게 타격이 되겠는가죠. 두 번째로, 대한민국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늘어난 것을 느꼈어요. 주변에 이민가고 싶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못 키우겠다는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산업화와 민주화를 그 짧은 시간에 이뤄내고, 월드컵 때 붉은 물결을 세계에 떨쳤던 한국에서 이렇게 이민가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집이 있는 사람들조차 불안해 해요. 집이 두 채 있는 사람도 자기 집값이 오름에도 불안해 한다는 거예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다 불안해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사회적으로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에요. 이것이 구체적으로 현상화되면 기사화할 예정이에요.

기획ㆍ정리 임지은_월간중앙 기자 (ucla79@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