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국인에 장기 기증한 필리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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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크롬웰 에르난데스(27.필리핀 미리암대 태권도과 전임강사) 선수. 그는 태권도를 무척 좋아했다. 태권도 공인 2단인 그를 필리핀에서는 이길 선수가 없었다.

그는 지난달 29일 충북 진천에서 열린 '2003 세계 태권도 화랑문화축제'에 출전했다. 경기 도중 상대방의 앞돌려차기를 맞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상태에 빠졌다. 비보를 듣고 입국한 가족은 의료진으로부터 소생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은 에르난데스의 장기를 '그가 사랑했던 한국'에 기증키로 하고 지난 8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장기 기증 수술을 마쳤다.

가족 측은 "태권도를 사랑했던 에르난데스는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을 모국인 필리핀 만큼 좋아했다"면서 "그가 기증한 장기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인이 새 삶을 찾는다면 그는 다시 살아 우리 곁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대회에 참가했던 해외 태권도 사범 열아홉명은 자신의 몸으로 남을 살린 에르난데스 선수의 희생 정신을 기념하는 사업을 펼치기로 뜻을 모았다.

이재석(54.미 태권도연맹 경기위원장)씨는 "자식의 장기를 이국 사람들에게 기증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에르난데스의 가족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대회조직위원회는 9일부터 충북 진천 화랑관에 분향소와 함께 모금함을 설치해 기념사업기금을 모을 방침이다. 우선 내년 대회부터 '에르난데스 상'을 제정해 수여키로했다. 국기원은 9일 고(故) 에르난데스 선수에게 명예3단 자격증을 주었다.

진천=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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